최근 경상북도 칠곡군 구미국가산업단지 3단지 스타케미칼 공장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로 숨진 일용직 노동자가 지난해 남영전구 광주공장 생산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됐다가 수은에 중독된 산업재해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31일 노동계에 따르면 폐업절차가 진행 중인 스타케미칼 공장에서 철거작업 도중 발생한 폭발사고로 사망한 박아무개(46)씨는 지난해 11월 수은중독으로 산재를 인정받았지만, 생계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구미까지 일을 하러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던 박씨는 올해 가을 결혼을 앞두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결혼 앞둔 남영전구 수은중독 피해자,
생계비 마련하러 스타케미칼 날품팔이 갔다가 목숨 잃어


박씨는 10월19일 오전 스타케미칼 공장 철거작업 중 사일로 내 원료(테레프탈산) 분진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로 사망했다. 지름 10미터에 달하는 탱크 뚜껑이 공장에서 150미터 떨어진 하천으로 날아갈 만큼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었다. 굴뚝 환기구를 제거하기 위해 절단작업을 하던 박씨 또한 탱크 뚜껑이 날아간 하천에서 발견됐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목숨을 잃었다.

박씨는 철거작업을 하는 일용노동자였다. 지난해 3월22일부터 26일까지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철거를 하다 수은에 중독됐다. 공장 지하 1층 대형설비를 산소절단기로 자르고 공장 밖으로 꺼내는 일을 했는데, 오한·구토 증상이 나타나면서 닷새 만에 일을 그만뒀다. 단 5일간 작업으로 수은에 중독된 박씨는 자신이 수은에 중독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가 그해 10월 <매일노동뉴스>의 남영전구 수은중독 사태 보도를 보고 찾아간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11월 산재를 인정받았다.

근로복지공단 광주지역본부에 따르면 재해발생일인 지난해 3월31일부터 올해 3월까지 박씨에게 휴업급여가 주어졌다. 3월 이후부터 9월까지는 한 달에 두 번 병원에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날에만 10만5천원씩 휴업급여를 받았다. 요양급여는 8월까지 총 137만원을 수령했다.

광주지역본부 관계자는 "지금까지 휴업급여는 2천200만원, 요양급여는 137만원이 지급됐다"며 "2015년 3월31일부터 1년 동안은 매월 휴업급여를 제공했고, 1년이 지난 이후에는 병원에 간 날에 한해 휴업급여를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해 4월부터 공단에서 지급한 월 21만원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결혼을 준비 중이던 박씨에게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수은중독 후유증 탓에 일거리를 찾기도 힘들었다.

박씨의 진료를 담당한 송한수 조선대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박씨가) 불면증이 심해 약을 처방받았고, 허리·어깨통증과 손발저림 증상을 보였다"며 "일상적인 생활은 가능했겠지만 기존에 하던 철거작업 등은 무리일 만큼 회복이 안 된 상태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수은중독의 증상 중 하나가 신체기능이 떨어지는 것이어서 조금만 움직여도 입안이 헐고 목이 부어 운동이나 일을 하기가 쉽지 않은데도 박씨는 '빨리 기력을 회복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며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수은중독으로 망가진 몸은 박씨 의지로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산재피해자 휴업급여 넉넉했더라면…"

박씨에 앞서 수은중독을 산재로 인정받았던 김용운씨는 "요즘 멀쩡한 사람도 일 구하기가 힘든데 누가 몸 아픈 사람을 써 주겠냐"며 "그래도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니까 이곳저곳에 일을 알아봤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스타케미칼 공장 철거는 생계비와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했던 박씨가 어렵사리 구한 일이었던 셈이다.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서 지원만 더 해 줬어도 이런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은에 중독된 것도 억울한데, 아픈 몸으로 돈 벌러 갔다가 죽었으니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또 어디에 있겠냐"고 토로했다.

송한수 교수는 "우리나라 산재보상제도가 산재노동자 개인의 상황이나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너무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공단이 산재노동자들의 상태를 보고 판단하지 않고 미리 설정한 기준에 맞춰 판단하다 보니 해당 기준을 넘어서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피해 당사자 상황과 조건을 고려한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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