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 주최로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금융위기 주범 성과연봉제 대책 토론회. 정기훈 기자

2008년 키코(KIKO·외환파생상품) 사태와 2013년 동양그룹 사태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극단의 성과주의로 인한 금융상품 불완전판매가 원인이라는 점이다. 키코는 유수 중소기업의 줄도산을 낳았다.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힌 동양증권 한 노동자는 죄책감에 목숨을 끊었다. 정부가 금융권에 몰아치고 있는 ‘성과주의 광풍’이 뿌리 내릴 경우 금융상품 판매가 사기와 범죄로 얼룩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됐다.

금융상품은 유독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크다. 성과주의 압박이 일정 수위를 넘으면 개인의 직업윤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의 근거다. 금융노조·사무금융노조·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8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금융위기 주범 성과연봉제”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참가자들은 “성과주의는 금융권에서 특히 위험한 제도”라고 입을 모았다.

'성과주의'가 사기·범죄 판매 낳아

토론회는 키코 사태로 중소기업들이 입은 피해를 살펴보는 것으로 문을 열었다. 조봉구 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회장은 키코로 피해를 입은 기업이 1천여개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70% 이상이 중소기업인데 협회 자체 조사결과 총 피해액만 10조원에 육박했다.

피해는 사업주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도 돌아갔다. 중소기업이 도산하자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고 절대빈곤계층으로 추락했다. 조 회장은 “키코 사태는 금융사가 성과와 탐욕에 사로잡혀 대대적인 불완전판매에 나선 것이 원인인데 덕분에 임원들만 성과급을 챙겼다”며 “키코 사태 사례를 보면 금융권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될 경우 조직력을 훼손하고 금융소비자가 피해를 볼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동양그룹 사태의 근본 요인이 성과급 중심으로 짜여진 증권업종의 임금체계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대순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는 “증권사 직원 대부분은 기본급이 100만~200만원인데 4대 보험료를 내면 남는 게 얼마 없다”며 “나머지는 모두 금융상품 판매에 따른 성과급인데 기본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성과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동양증권 소속 직원들이 동양그룹 회사채와 기업어음을 불완전하게 판매했다고 분쟁조정이 접수된 건수가 3만6천건이다. 금융감독원은 이 중 약 2만5천건에 대해 불완전판매를 인정했다. 판매기간은 불과 6개월에 불과했다.

이 공동대표는 “몇 안 되는 동양증권 직원들이 짧은 기간 판매한 상품수가 수만건에 달했는데, 회사가 망해도 전액 상환받을 수 있다고 안내한 사례도 있었다”며 “동양증권은 직원들에게 파격적인 성과급을 제시했고, 그 결과 사기와 범죄판매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말려야 할 정부가, 조장이라니…"

금융상품의 본질적 특성상 성과주의와의 결합은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송기훈 사무금융노조 부위원장은 금융상품을 자동차와 비교해 설명했다.

“자동차는 배기량이나 용도에 따라 소비자가 본인에게 필요한 것을 쉽게 고를 수 있지만 금융상품은 다르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실적 올리기 경쟁은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가져온다. 정부가 건전한 금융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면 성과주의를 도입하려는 금융기관을 오히려 나서서 말려야 한다.”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미국과 영국이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적용하던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있는데 우리는 정신노동자에게까지 적용하려 든다”며 “실익 없이 노동자에 대한 통제 강화만을 목적으로 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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