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자은 기자

#1. 공공병원인 A병원은 현재 의사를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시행하고 있다. 병원은 진료실적을 달성하지 못한 의사에게 사직을 강요한다. 의사들은 진료건수를 올리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를 권유하고 과다 처방하는 등 과잉진료를 남발한다. 병원은 수익이 적다는 이유로 분만실과 신생아실을 폐쇄했다.

#2. 2010년 1월 부임한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은 조직 전반에 성과주의 도입을 강조했다. 같은해 5월 B경찰서에서 입에 재갈을 물리고 테이프로 얼굴을 감은 후 폭행을 당했다는 진정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됐다. 인권위 조사 결과 22명이 B경찰서에서 고문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검거율을 성과평가지표로 만든 것이 고문의 배경으로 지적됐다.

#3. 소방방재청은 2010년 화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화재진압 활동을 수치화해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와 페널티를 줬다. 실제 실적이 부진한 지역은 소방본부장이 직위해제됐다. 이듬해 허위보고와 실적조작이 이뤄졌다는 내부고발과 양심선언이 이어졌다.

◇환자 주머니 털수록 좋은 평가 받아=공공부문에서 성과주의가 확대되면 국민이 공공서비스를 마음 놓고 이용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종민·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과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시민사회 공동행동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공부문 성과주의 도입에 따른 국민피해 증언 및 해결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 성과주의로 인한 부문별 직접적 피해사례가 발표됐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공공병원에서 벌어진 성과주의 사례를 발표하고 “성과주의가 확대되면서 병원에서는 검사·수술 건수 늘리기, 야간 비응급수술 확대, 토요근무제 확대 등 종착역 없는 출혈경쟁이 발생했다”며 “성과주의가 환자와 직원·병원·의료체계 전반에 얼마나 심각한 폐해를 초래하는지 명확히 보여 준다”고 말했다. 성과주의를 도입한 병원들에서는 공통적으로 CT·MRI·PET 등 고가장비를 이용한 검사율이 높아졌고 비급여 진료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국장은 “병원 업무는 환자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이기 때문에 수치로 계량화해 평가할 수 없다”며 “성과연봉제를 실시하면 환자를 대상으로 얼마만큼의 수익을 올렸는가가 평가 지표가 되기 때문에 과잉진료와 과소진료 등 환자 피해가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돈’만을 위해 움직이는 공무원 양산=이희우 전국공무원노조 정책연구원은 “성과연봉제와 성과급은 공무원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학습시킨다”며 “일을 잘하면 돈은 준다는 보상방식은 직원들에게 돈이 더 중요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주고 ‘돈’이라는 동기에 의해서만 일하는 이유를 확인하도록 직원들을 조건화한다”고 주장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헌법 제7조에 따라 공무원이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될 수 있도록 공직사회에서 성과연봉제나 성과급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지하철공사의 성과주의 피해사례도 발표됐다. 2008년 공기업 혁신안 추진으로 5678서울도시철도공사는 4년간 수익사업 극대화와 조직 개편을 실시했다. 에너지 절약 명목으로 무리하게 시행된 1인 승무 수동운전으로 무정차 사고와 지하철 문에 승객이 끼이는 사고가 빈발했다. 시스템 장애 신고 건수를 줄이려 사고를 은폐하고 부서 간 책임을 회피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허인 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신사업 대부분은 초기 투자비용을 손해 보고 중단됐고 각종 사업과 관련한 특혜시비 등 부정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며 “현장인력 축소로 시민 서비스가 축소되고 현재 대부분의 조직구조는 2008년 이전으로 회귀했다”고 말했다.

이날 공동행동은 △정부에 공공기관 성과퇴출제 일방 강행 중단 요구 △공공서비스 정원 확대를 통한 청년 고용과 민영화 정책 중단 등 공공부문의 올바른 개혁 정책 요구 △국회와 정치권에 성과퇴출제 반대 당론 채택과 공공부문 노조의 파업권 보호 요청 등 활동방향을 밝혔다. 최영준 공동행동 공동운영위원장은 “공공부문의 경쟁 강화는 노조 약화, 묻지마 민영화, 쉬운 해고로 이어진다”며 “공공부문의 수익성 강조는 곧 공공요금 인상과 서비스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대중적으로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