땜질처방?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3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제45차 고용정책심의회를 마친 뒤 결과 설명을 위해 단상으로 오르던 중 배경 현수막이 떨어져 한 직원이 들어올리려 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의 조선업 특별고용지원업종 지정이 땜질식 처방이라고 비판했다. 정기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30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면서 1일부터 대형 3사를 제외한 7천800여곳의 조선업·유관 기자재업체와 소속 13만8천 종사자에 대한 지원을 시작한다. 노동부는 조선업 인력조정이 예상보다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발생할 실업자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향후 고용상황에 따라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특별고용지원업종, 조선업에 첫 적용

특별고용지원업종은 지정 요건이 까다로워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아 온 고용위기지역 지정제도를 대신하기 위해 지난해 말 새로 만들어진 제도다. 고용위기지역은 지역 내 실직 인원이 전년 월평균보다 3% 이상 급증하고 고용보험 피보험자가 5% 이상 감소해야 지정할 수 있는 반면 특별고용지원업종은 고용정책심의회 의결로 지정이 가능하다. 특별고용지원업종에 지정되면 고용유지지원금 상향 조정·직업훈련비 지원 확대·구직급여 특별연장(특별연장급여) 같은 지원을 받게 된다.

노동부는 이날 내놓은 대책에서 세 가지 방안 중 특별연장급여 시행을 유예하는 대신 △4대 보험료·세금 납부 유예 △체불임금(체당금) 지원 강화 △실업자 국민연금·건강보험 지원 △일자리 유지·발굴 방안을 포함했다. 어업지도선·감시선 같은 정부기관 소속 선박(관공선)을 조기 발주하고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같은 대형 공사나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추진해 일감을 제공한다.

특별연장급여 시행을 유예한 것은 조선업 실직자의 재취업률이 58.7%로 전국 평균(36.2%)을 상회해 현재로서는 지원 필요성이 적다는 판단 때문이다. 현재 퇴직자 상당수(67.7%)가 9월 이후 구직급여 수급이 종료되기 때문에 제도 시행을 늦추는 것이 더 많은 인원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점도 고려됐다. 특별연장급여 시행은 8월께 지급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예산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 SOC 사업은 추경 편성

또 조선업 밀집지역인 울산·거제·영암·진해에 조선업 희망센터를 설치하고 실직자에 대한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한편 고용·복지·금융 같은 각종 대책을 패키지로 지원한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저금리 정책자금 같은 금융지원과 사업전환·신규창업 같은 정책지원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다만 노동계와 지역에서 요구하는 고용위기지역 지정에 대해서는 지정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기권 장관은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지방고용관서, 지역 노사단체가 참여하는 조선업 구조조정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각종 지원 사업이 지역 입장에서 조정·보완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조선업 지원에 올해 하반기 4천600억원과 내년 상반기 2천900억원을 포함해 향후 1년간 7천5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애초 계획했던 4천700억원보다 2천800억원이 늘었다. 조선업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사정 악화가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됐다.

예산은 대부분 고용보험기금에서 충당한다. 다만 SOC 사업을 포함한 지역 지원금은 이번에 편성될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될 예정이다.

 


대형 3사 고용유지 여력 있다

정부가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하면서 대형 조선 3사를 제외한 것은 이들 업체의 고용사정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형 3사는 상대적으로 물량이 많이 남아 있어 일정 기간 고용유지 여력이 있고 자구계획과 관련한 인력조정 방안이 노사 간 합의되지 않아 고용조정이 눈앞에 임박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노동부의 진단이다.

조선업 민관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인 류장수 부경대 교수(경제학부)는 “협력업체와 물량팀을 중심으로 인력조정이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까지 원청 정규직이 비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이지는 않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형 3사를 지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맞지 않고 오히려 지원 예산을 협력업체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류 교수는 이어 “내년 상반기에는 대형 3사도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며 “상황에 따라 대형 3사를 포함시키는 방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형 3사를 제외한 게 노조가 파업을 예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기권 장관은 이와 관련해 “노동계(대형 3사)가 파업한다면 국민이 납득하기 어렵고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리라 본다”며 “투쟁보다는 협력적 구조조정을 해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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