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6월 임금체불 해결 등을 요구하면서 파업집회를 하고 있는 건설노조 조합원들. 2003~2007년 이어진 노조에 대한 검경수사로 노조활동은 크게 위축됐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일상적인 노조활동이 공갈 또는 협박행위가 되고, 노조간부들이 '삥'이나 뜯는 조직폭력배로 몰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실시된 검찰과 경찰의 건설노조 협박·공갈죄 수사가 그랬다.

수사당국과 정부가 건설노조 활동을 불법으로 간주한 이유는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과 교섭을 했다”는 것이다. 원청에서 전임자임금을 받는 것 역시 불법행위로 봤다.

검찰과 경찰, 법원까지도 노동관계법상 관계가 없는 원청과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전임자임금을 받았으니 “원청을 협박하지 않고서야 노사합의가 나올 리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노조활동은 모두 협박이나 공갈로 치부됐다. 단체협약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해 집회를 한 것은 물론이고 노조가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법상 위법행위를 고발하겠다”고 압박한 것도 마찬가지 범죄가 돼 버렸다. 그렇게 전임자임금 수령은 '금품수수 행위'로 둔갑했다.

노사가 합의해도 ‘불법’
노동법 아닌 폭력행위처벌법 위반


최근 상황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차이점이 있다. 10년 전에는 건설노조가 고용관계가 없는 원청과 협상을 한 것이 발단이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노조는 원청업체로부터 하청받은 전문건설업체와 임금·단체협약을 체결한다. 전문건설업체들은 건설일용직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고용관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타워크레인분과나 건설기계분과 등은 관련 사업주단체와 교섭한다.

그렇다고 경찰 수사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교섭 대상과 관련한 이슈를 제외하면 수사는 10년 전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노조와 전문건설업체들이 맺은 표준단협을 보면 공사현장 건설업체는 노조가 정하는 인원에 대해 월 40시간의 근로를 면제해 준다.

노조는 보통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건설업체와 단협을 체결한 뒤 공사현장마다 월 40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근로시간면제자 급여를 받는다. 노조는 5~6개 건설현장을 묶어 한두 명의 근로시간면제자를 두는데, 업체에서 받는 돈은 월 400만~500만원 정도다. 이 돈이 전부 급여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보통 근로시간면제자 한 명당 적게는 월 170만원, 많게는 250만원을 지급하고 나머지 돈은 노조 운영비로 사용한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나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에는 건설일용직처럼 사업장 이동이 잦거나 고용이 불안정한 노동자들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 때문에 노사가 합의를 통해 노동부 고시에 준하는 수준으로 타임오프 한도를 설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적법한 타임오프로 보지 않는다. 노동부 관계자는 “(2010년 타임오프 제도가 시행된 뒤) 건설일용직에게 부여하는 타임오프 문제의 적법성을 판단해 본 적은 없다”면서도 “근로시간면제자들이 해당 업체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부당한 노조 원조로 봐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예컨대 A지역 건설현장 5곳을 담당하는 근로시간면제자가 다섯 군데 현장 공사업체 모두와 고용계약을 맺지 않았다면 불법행위라는 얘기다. 노조법상으로는 부당노동행위지만 경찰 수사 단계에서는 '파렴치범'이라는 굴레가 덧씌워진다.

혹시라도 노조가 전문건설업체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집회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업무방해이자 공갈·협박·갈취가 되기 십상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나 환경관련법을 어긴 것을 문제 삼겠다”고 사용자를 압박해도 그런 혐의를 받는다.

주 40시간도 아니고, 월 40시간 근무에 해당하는 근로시간면제자 급여를 받은 노조간부에 대해 “지난 한 해 동안 건설현장을 돌면서 수천만원어치의 금품을 갈취해 왔다”고 주장하는 경찰 수사 결과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압박’과 ‘협박’의 차이는?
 

▲ 서울시내 한 건설현장. 현행 근로시간면제 제도는 사업장이 고정돼 있지 않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는 건설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건설노사가 합의한 근로시간면제 한도는 위법한 것으로 간주되고, 노조가 벌인 투쟁은 공갈·협박 혐의를 받게 된다.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0년 전 수사 사례와 업체들에게 조합원 우선고용을 요구한 노조 타워크레인분과 간부 15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최근 법원 판결도 수사당국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타워크레인분과 사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은 “노조가 조합원 우선채용을 요구한 것은 근본적으로 임대업체의 경영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며 노조의 합법적인 집회까지 '협박 행위'로 판단했다. 노조가 업체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가, 합의가 이뤄지면 철회한 행위에 대해서도 같은 혐의를 적용했다.

노조 내 일용직 노동자로 구성된 각 지역 건설지부 표준단협에 조합원 우선채용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이행하기 위한 노조의 각종 활동이 불법행위로 치부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올해 5월부터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하고 있는 경찰은 “특정 노조원이나 타워크레인 같은 장비를 우선 사용하라고 요구하면서 떼쓰기 식 불법 집회시위·업무방해·건조물침입·고공농성 등 집단불법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노조가 집회를 하거나 사용자들의 불법행위 고발을 압박하는 활동을 협박이나 공갈로 보는 것은 노사관계의 기본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단체교섭이 시작되면 노조와 사용자들은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상대방을 설득하기도 하지만 강하게 압박하기도 한다. 노조가 “우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하겠다”고 경고하고, 사용자측이 “파업시 불법행위에 대해 의법조치하는 것은 물론 강력하게 징계하겠다”고 맞서는 것은 드문 풍경이 아니다.

같은 의미에서 건설노조가 업체들에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한 것을 문제 삼겠다”고 말하는 것 역시 통상적인 노사 간 힘겨루기로 봐야 한다. 이런 행위를 공갈이나 협박으로 본다면, 사용자측이 “파업에 참여하면 철저하게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하겠다”고 조합원들을 압박하는 것도 협박이 된다.

노사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제기한 각종 민·형사 소송 철회 여부가 막판 쟁점이 되고, 결국은 대부분 철회하는 것 역시 일반화된 모습이다. 노사가 대립할 때와 대화국면으로 접어들었을 때 각각 보이는 행동이 다른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럼에도 검경이 유독 건설노조에만 유별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건설현장 특성 반영 못하는 타임오프 제도

수사기관과 법원은 일용직이나 특수고용직 중심으로 이뤄진 건설현장과 초기업노조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노조법을 포함한 현행 노동관계법은 적게는 3개월, 길게는 1년 뒤 공사가 끝나는 대로 사업장을 옮겨 다니는 건설현장에서 노조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 노동자들이 상시적으로 근무하는 사업장 위주로 노동관계법이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타임오프 제도다. 사업장 조합원 규모별로 타임오프 한도를 규정하고 있다. 조합원 규모에 비례해 근로시간면제 인원을 정하고, 노조가 지목한 노동자들이 유급으로 노조활동을 한다.

지역 곳곳을 옮겨 다니고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건설노동자들은 노조법 규정을 따르기 힘들다. 누군가는 전임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노동부 요구처럼 해당 건설현장에 있는 건설업체와 직접 고용계약을 맺은 노동자가 그 역할을 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몇 개 현장을 대표해 한두 사람이 활동을 하게 된다. 타임오프 제도가 건설현장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 노사가 어렵사리 맺은 단협에 노동법을 준용하기 힘들어지고, 노동법 위반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정부가 건설현장 특수성을 고려해 타임오프 제도를 제대로 만들든지, 그렇지 않다면 현행법에 최대한 맞춰 노사가 합리적으로 합의한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속바람'에 초토화되는 노조

건설현장 노조 관계자에 대한 전임자임금 지급이나 노조활동을 적법으로 본 판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구고등법원은 2007년 대구경북건설노조 위원장을 포함한 3명의 공갈·협박 혐의와 관련해 "노조와 원청이 맺은 단협은 유효하다"고 인정했다. 노조전임자 자격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당시 “지역 산별노조 성격을 가진 대구경북건설노조의 경우 특정 건설현장에 소속되지 않고 노조 업무에만 종사하는 노조간부들도 법상 근로자로서 자격이 인정된다”며 “노조전임자 선정 여부는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할 사항”이라고 판시했다.

노조의 단협체결 요구와 공갈죄 성립 여부에 대해서는 “노조가 단협을 체결하기 위해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요구하는 것은 노조의 통상적인 업무범위에 속한다”며 “노조가 건설현장의 환경·산업안전 문제에 대한 고발 내지 고발태세를 취하는 동시에 단협 체결을 요구했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협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대구고법 판결은 대법원에서 뒤집혔지만 건설노조와 건설현장, 그리고 건설 노사관계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동계는 "진짜 문제는 재판이 아니라 수사로 인한 후폭풍"이라고 입을 모은다. 수년 뒤 재판에서 이겨 무혐의가 확정되더라도 이미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입는다. 경찰이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노조를 공갈·협박범으로 몰고, 간부들이 구속되면 노조는 치명타를 입게 된다.

노동자들을 대신해 조합원들을 모으고 근로조건·안전문제 개선 노력을 기울인 노조간부들이 구속되면 노조는 제 기능을 할 수 없다. 조합원들 또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노조는 이름만 남게 되는 것이다. 2005년 공갈·협박죄로 구속된 경험이 있는 이영철 건설노조 부위원장은 “수년에 걸쳐 검경 수사가 진행되면서 조합원들이 급감했고 정상적인 활동을 하기 힘들 정도로 노조가 위축됐다”며 “조합원을 늘리고 노조가 겨우 안정되려는 마당에 다시 검경의 공안탄압이 예상돼 걱정이 많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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