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현장 분위기가 심상찮다. 일용직 또는 특수고용직으로 이뤄진 건설노조 활동이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에 따라 지급된 유급전임 시간을 공갈·협박 같은 범죄행위로 간주하는 수사당국의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노동계는 원청회사와 단체교섭을 맺거나 노조 전임자임금을 수령했다는 이유로 노조간부들을 대거 구속했던 2003~2006년 공안탄압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고 반발한다.

경찰 “노조 떼쓰기 불법행위 처벌”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경찰은 최근 건설현장 계약·입찰 관련 금품수수 비리는 물론 노조활동에 대한 수사까지 진행 중이다. 경기 중서부 지역을 포함해 일부 지역은 업체 사용자 수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조만간 건설노조 간부들을 집중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사는 경찰청이 지난달 2일 발표한 ‘건설현장 불법행위 특별단속’ 계획에 따라 실시되고 있다. 경찰은 다음달 말까지 △건설공사 계약·입찰·하도급 과정에서의 금품수수 행위 △부실시공 등 안전사고 유발행위 △노조를 포함한 특정집단의 떼쓰기 식 집단 불법행위 △오염물질 불법배출 등 환경파괴 행위 △사이비 기자 갈취행위를 수사할 방침이다.

경찰은 특히 건설노조 활동과 관련해 소속 조합원이나 조직원의 고용을 요구하면서 현장을 점거하거나 시설물 손괴·폭행·협박하는 행위를 중점적으로 단속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건설노조는 경찰이 건설업체들과 체결한 단협에 따라 확보한 타임오프 시간, 산업안전활동 같은 정당한 노조활동까지 협박이나 공갈죄로 엮을까 우려하고 있다.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전임자임금 받았다가 30명 구속
2003~2006년 사태 되풀이되나


검찰과 경찰은 2003년 대전건설노조 간부들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전국 건설노조 관계자 30명을공갈·협박 혐의로 구속했다. 구속자에는 2006년 당시 민주노총 현직 부위원장까지 포함돼 있었다.

검경은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는 대형건설업체(원청)와 단협을 체결하고 전임자임금을 받은 것을 문제 삼았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노조가 요구안을 관철하기 위해 건설현장의 산업안전이나 환경문제를 고발하겠다며 원청 사용자들을 협박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최근 수사에 대해 “이번 집중단속은 부실시공이나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건설현장의 관행을 뿌리 뽑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며 “노조 전임자임금 같은 것까지 불법행위로 보고 수사할지 여부는 확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설현장 노사 관계자들이 전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경찰이 "건설현장의 전반적인 비리행위 적발"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수사 초점은 노조활동에 맞춰져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업체 관계자 “경찰이 노조 관련 질문만”

최근 경찰서에 출두해 수사를 받은 한 전문건설업체 관계자는 “경찰이 미리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확인만 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노조에 대한 질문만 집중적으로 받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와 경찰 중 어느 편에 서기 곤란해 소극적으로 답했더니 ‘세무조사 받고 싶냐’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건설노조 경기건설지부 관계자는 “이미 경찰이 타임오프 문제까지 광범위한 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노조 탄압을 목적으로 한 기획수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노사가 대화와 갈등을 반복하더라도 합의를 하면 각종 소송을 취하하는 게 일반적인데도 (검경이) 이런 노사관계에 형벌의 잣대를 들이밀었다”며 “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나 파업 자체를 금기시하던 19세기 유럽과 다른 게 뭐냐”고 비판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