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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하겠지만 비준은 못한다?] '국제노동기구 정신'<ILO 4개 핵심협약> 25년간 외면한 한국 정부
김학태  |  ta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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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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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입한 때는 1991년 12월9일이다. 당시 한국 정부는 국회 동의를 받은 뒤 ILO 사무총장에게 ILO 헌장 수락서를 제출하면서 152번째 회원국이 됐다. 올해 12월이면 ILO 가입 25주년이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의 ILO 협약 비준 성적을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189개의 ILO 협약 중 한국 정부가 비준한 것은 29개에 불과하다. 전체 187개 회원국 중 119위다. 핵심협약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174위까지 떨어진다. 절대적인 협약 비준수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ILO가 선정한 핵심협약(8개) 가운데 비준한 것이 절반에 그친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 정부 협약 비준 성적 189개국 중 174위

한국 정부가 비준한 핵심협약은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노동자의 동등보수에 관한 협약(제100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제111호) △취업의 최저연령에 관한 협약(제138호) △가혹한 형태의 아동근로 철폐에 관한 협약(제182호)이다.

이들 4개 협약은 빠르면 97년, 늦으면 2001년에 일찌감치 비준했다. 제111호 협약의 경우 비준을 해 놓고도 비정규직 등에 대한 고용차별 탓에 ILO 총회에서 네 차례나 기준적용위원회 안건으로 상정되는 수모를 겪었다. 기준적용위 안건에 상정된다는 것은 비준한 협약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준을 하고도 국내 제도가 미흡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나마 비준을 했기 때문에 국제사회나 국내로부터 압력을 받고 제도개선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비준을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을 보면 비준이 늦어지는 것에 대한 심각성은 더 커진다.

“87·98호 협약, 다른 모든 협약의 전제조건”

비준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협약(제98호)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제29호) △강제노동의 폐지에 관한 협약(제105호)이다.

노동계는 물론이고 전문가들도 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협약인 87호와 98호 협약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냈다. 강제노동과 관련한 협약 역시 강제노동 소지가 있는 공익근무요원 제도, 파업 참가자가 구속될 경우 강제노역을 하게 돼 있는 제도가 협약 비준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정부 주장대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 의무병역제도가 시행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으로 공익근무요원 제도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반면 노동자들의 기본권과 밀접한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의 경우 제도개선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최대한 비준을 앞당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LO 협약은 노동자들의 고용이나 산업안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이런 협약을 시행하는 것은 노동기본권을 보장한 87호·98호 협약의 비준 혹은 이행을 전제로 한다. 노동자들을 위한 법·제도를 시행하더라도 노동기본권이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지 않으면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87호·98호 협약은 노동자들이 자주적으로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 보장과 노조활동에 따른 차별 금지, 정부 개입 없는 단체교섭 보장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우리나라 현실에서 보면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와 노조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필수공익사업장 제도, 해고노동자의 노조가입, 사내하청 노동자와 특수고용직 등 비정규직의 노조활동 보장, 교사나 공무원의 노조가입과 단체교섭권 보장, 노조 설립신고 제도 등 주요 노동현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강제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시급한 문제지만 결사의 자유 관련 핵심협약의 경우 한국 노동자들의 기본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유력한 수단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광택 국민대 교수(법학)는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 같은 노동현안이 산적해 있는 가운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 노조활동을 제대로 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핵심협약 외면, 노동외교 겉모습만 치중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법이나 제도개선에 대해서는 국가인권위원회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인권위는 정부에 87호·98호 협약 비준과 제도개선을 권고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런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포함해 주요 법·제도가 ILO 협약과 충돌하는 내용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87호와 98호 협약 비준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고 정부에 권고하는 것을 업무과제로 삼고 있다”면서도 “빨리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이 ILO에 가입한 뒤 노동외교 범위를 넓히면서도 정작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아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은 96년 ILO 이사국이 됐고, 2003년에는 의장국까지 됐다. 2006년에는 부산에서 ILO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총회를 열었다. 2014년에는 정이사국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은 노동외교 실무적 능력이 강화되는 것과 비교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룬다. 초대 노동부 장관인 권중동 한국ILO협회 회장은 “노동외교 역량을 강화하기 전에 노동법이나 노사관계를 국제기준에 맞게 혁신해야 한다”며 “이런 노력 없이 회원국 활동만 강화하면 장기적으로 국가 위상을 저하시키는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핵심협약 비준 노력” FTA 조항도 '휴지 조각'

최근 국제사회 흐름을 보면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것을 체결하거나 발표할 때 국제 노동기준 준수 여부와 연계하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고 별다른 효과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2011년 7월 발효한 한-EU FTA다. 한-EU FTA 협정문 제13장(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양 당사자는 국제노동기구 회원국 지위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와 1998년 제86차 국제노동기구에서 채택된 작업장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선언을 존중, 증진 및 실현하기로 약속한다”고 돼 있다. 이어 “양 당사자는 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뿐만 아니라 국제노동기구에 의해 현행협약으로 분류된 그 밖의 협약들을 비준하기 위해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ILO가 선정한 핵심협약에 대한 비준 노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의무조항이 아닌 노력조항이다. 한국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배경이다.

협정 발효 뒤 유럽연합과 한국 정부는 양측 정부 관계자로 구성된 ‘무역과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와 노사 단체 관계자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시민사회포럼을 꾸려 노동·환경문제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두 기구 모임을 진행하면서 한국이 4개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나왔고, 관련 공동연구를 실시하는 데까지 의견이 모아졌다.

그런 가운데 유럽연합과 한국 정부는 이미 한국 정부가 비준한 111호 협약(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을 중심으로 공동프로젝트를 수행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준하지 않은 핵심협약에 대한 공동연구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시민사회포럼에 참가하고 있는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국내 노동계는 비준하지 않은 협약 이행을 위한 공동프로젝트를 요구했고 지난해 9월 회의 때까지는 그런 방향으로 결론이 났는데, 양쪽 정부가 올해 2월 갑자기 111호 협약 중심으로 연구를 한다고 통보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FTA 협정문에는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력이 명시돼 있지만 의무조항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ILO가 98년 6월 총회에서 ‘노동에 있어서 기본적인 원칙과 권리에 관한 선언’을 채택해 8개 핵심협약을 선정한 것은 비준을 하지 않은 국가도 협약을 이행할 의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런 선언의 정신이 국가 간 이익 앞에 의미가 퇴색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이런 흐름에 편승하고 있는 셈이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는 “한국 정부는 98년 ILO 선언에 대해 ‘선언의 정신은 이해하지만 실제 협약을 비준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희한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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