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일 오후 서울 광진구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사 사망사고 현장에 시민들이 붙여둔 메모지와 국화가 가득하다.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우리 아이를 3일이나 못봤어요. (아들의 시신을 보니) 뒤통수가 떨어져 나가 알아볼 수가 없어요. 옷을 보고 나서야 우리 애인 걸 알았어요. 20년을 키운 아이인데 어미가 어떻게 얼굴을 못 알아볼 수가 있어요?”

지난 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 점검 중 숨진 정비사 김아무개씨(19)의 어머니인 A씨가 오열했다. 슬픔을 토하듯 목소리는 흔들렸다. 정비사 김씨는 스크린도어 오작동 신고를 받고 점검을 하다 오후 5시57분 승강장으로 진입한 2호선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A씨는 아들의 장례절차 진행을 거부한 채 31일 오전 서울 광진구 구의역 개찰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앞에 섰다. 왜소한 체구의 A씨는 “안전장치도 없는 작업환경에서 끼니도 굶으면서 일하다 죽은 우리 아이의 원통함을 풀어 달라”고 연거푸 호소했다.

A씨는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한 노동·시민단체가 연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기자회견은 김씨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스크린도어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취지로 열렸다. 컵라면 하나 유품으로 남기고 세상을 떠난 김씨를 추모하는 발걸음이 하루 종일 이어졌다. 구의역 개찰구 앞에는 추모 공간이 마련됐다. 정치권 인사들과 많은 시민들이 사고가 난 스크린도어 앞을 찾았다.

“책임감 강하게 키운 것 후회돼 미치겠다”

A씨는 큰아들을 잃은 슬픔을 20여분에 걸쳐 쏟아냈다. A씨는 아들이 일한 정비용역업체 은성PSD의 관리 소홀을 지적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아들을 묘사할 때는 눈물을 쏟으며 통곡했다. 숨진 김씨는 홀로 작업을 하다 사고를 당했다. 김씨의 공구가방에서 컵라면과 숟가락이 나와 안타까움을 더했다. 수리업체 정비사는 고장신고 접수 후 1시간 안에 도착해야 한다. 급한 걸음에 컵라면은 한 끼니 식사였던 셈이다.

A씨는 “대기 중에 한 끼라도 먹으려고 사발면과 숟가락을 갖고 있는 걸 이제 알았다”며 “(우리 아이는) 안전장치도 없는 작업환경에서 끼니를 굶으면서 일했는데 집에 보탬이 되려고 끼니 걸러가며 시키는 대로 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토로했다.

이어 A씨는 “(아이가 번) 그 100만원이 뭐라고…”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A씨의 사연을 듣자 취재진을 비롯해 구의역을 지나는 시민들도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기자회견이 진행된 개찰구 앞에는 시민들도 걸음을 멈추고 A씨의 발언을 끝까지 들었다.

노동자·시민 추모 물결

시민들은 추모 공간과 사고 현장에 알록달록 포스트잇이 붙었다. 고인에게 시민들이 쓴 짧은 편지다. 한 시민은 “시민 안전을 위한 스크린도어가 청춘의 생명을 앗아 갔다”며 “문제는 매뉴얼이 아닌 외주화, 최저가 입찰 등 시스템인데 우리는 문제의 원인을 알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죄송하다”고 적었다. 또 다른 시민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아닌 사람이 우선인 나라를 원한다”고 바람을 내비쳤다.

추모 공간을 찾아 국화꽃을 헌화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추모 공간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3분 김치찌개, 과자, 컵라면이 쌓였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사망한 김씨를 위해 가져 온 케이크도 놓였다.

공공운수노조를 비롯해 노동·시민단체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안전업무 외주화를 즉각 중단하고 생명와 안전업무를 하는 모든 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조 관계자는 “우리는 이 억울한 죽음에 책임이 있고, 서울메트로가 시민의 안전과 비용절감을 우선함에도 제대로 투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직접고용되고 시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애란 공공운수노조 사무처장은 “스크린도어 사고가 최근 3번째인데 사고가 한 번 났을 때 진상규명을 제대로 했다면 예방할 수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윤종오 무소속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에 들어가 이 문제를 다루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