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의역 승강장 안전문(스크린도어) 정비노동자 사망사고가 안전관리업무 외주화 참사라는 지적이 높다. 그런 가운데 서울메트로와 용역업체가 전형적인 불공정 갑을계약을 맺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서울메트로는 안전사고를 예측이나 한 듯 “안전관리와 사고 발생시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가 진다”는 내용을 용역계약서에 반영했다.

<매일노동뉴스>는 31일 서울메트로가 승강장 안전문 유지·관리 위탁용역 계약을 앞두고 지난해 3월 마련한 계약특수조건(용역계약서) 및 과업지시서를 입수해 살펴봤다. 계약서 유효기간은 올해 6월30일까지다.

◇안전활동 강화? 안전문제 떠넘기기=서울메트로는 스크린도어 고장 발생시 정비노동자가 1시간 이내에 출동하지 않을 경우 용역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계약서에 명시했다. 구의역에서 숨진 정비노동자 김아무개(19)씨 역시 해당 지침에 따라 고장발생 신고 접수 후 50여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수리를 서두르다 참사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특수조건 및 과업지시서에는 이러한 조건이 명확하게 명시돼 있다. 서울메트로는 고장·장애 신고 접수 후 1시간 이내에 정비사가 출동을 완료하고 즉시 처리가 가능하면 처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최대 24시간 이내에 처리를 완료하도록 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이행하지 못하면 지연배상금을 청구하겠다고 명시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메트로는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2인1조로 근무조를 편성하고 용역업체에는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반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경우 사고 책임은 물론 재해자 보상까지 모든 책임을 하청업체가 진다는 내용도 계약서에 반영했다.

언뜻 보기에는 하청업체에 안전활동을 강화하라고 주문한 것 같지만 뒤집어 보면 안전사고·재해보상 책임을 모두 하청업체에 떠넘기는 조항이다. 오선근 서울지하철노조 안전위원은 “2인1조 편성을 위한 충분한 인력 확보 등 안전을 위한 제반여건을 마련해 주면서 책임을 묻는다면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며 “그렇지 않고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라면 책임 떠넘기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 측면에서 서울메트로가 외주업체와 맺은 용역계약은 혹독한 불공정 갑을계약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불법파견 의식? 노동자 쟁의행위 규제=서울메트로가 스크린도어 유지·관리업무 외주화가 불법파견 논란에 휩싸일까 우려한 듯한 조항도 눈에 띈다. 서울메트로는 계약서에서 “계약상대자(하청업체)가 경영권·인사권·노무관리 등을 독립적으로 시행하고 사용자로서 근로 관련 법령상 모든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그러면서도 “용역계약 이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범위 내에서 발주기관(서울메트로)이 합리적으로 요청하는 경우는 이를 반영한다”는 단서조항을 달았다. 하청업체의 독립성을 강조해 파견이 아닌 용역계약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셈이다.

서울메트로는 이와 함께 하청업체에 소속 노동자들이 노사문제 등으로 원청(서울메트로)을 상대로 항의나 집단농성을 하지 못하도록 노무관리를 철저히 하도록 주문했다. 이들 노동자가 업무방해·시설점거 등의 행위를 할 경우 하청업체와 소속 노동자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도 용역계약서에 담았다.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어떠한 집단행동이나 책임도 물을 수 없도록 사전에 규제해 놓은 것이다.

한편 고용노동부는 이달 7일부터 원청인 서울메트로와 스크린도어 운영업체인 은성PSD를 포함한 하청업체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다. 근로감독관과 안전보건공단 직원 등 38명이 투입된다. 노동부는 “승강장 스크린도어 사고가 판박이처럼 반복되고 있어 특별근로감독을 하게 됐다”며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하고 사고재발 방지를 위한 안전관리시스템이 구축되도록 지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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