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부산교총이 5월 초 초등 교직원 배구대회를 열면서 ‘정규직은 1선 혹은 2선에, 기간제교사 등 비정규직은 3선에 배치’하도록 해서 문제가 된 바 있다. 교육주간 및 스승의 날을 기념해 교직원 체력향상과 친목 단결을 위해 여는 배구대회라고 하는데 “무기계약직이 아닌 직원은 반드시 후위에 선다”거나 “감독과 코치는 교원으로 제한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다.

부산교총은 “원어민 강사나 스포츠 강사들이 1선에 서면 경기가 재미없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규정을 만든 것”이라고 해명했고 “다른 유형의 비정규 노동자가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했다.

왜 부산교총은 이런 공문을 내려보내면서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게 된다. 부산교총 직원은 원어민 강사나 스포츠 강사를 떠올리면서 이들이 1선에 배치되면 경기가 재미없겠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공문에는 이 선생님들을 지칭할 때 ‘무기계약직이 아닌 직원’이라고 표현했다. 체격이 크거나 체육을 잘하는 이들을 후위에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것은 하나의 의견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을 ‘고용형태’로 특정하는 순간 이것은 차별의 언어가 된다. 이 공문을 만든 부산교총 직원은 ‘무기계약직도 아닌 자’가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고통에 둔감했으며 그 표현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를 인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규직들에게는 일상적이고 당연한 일들이 비정규 노동자들에게는 매번 고통이고 모욕일 수 있다. 학교에서 정규직 교사들이 기념일을 맞아 가져온 떡을 비정규 노동자들이 돌리도록 시킨다거나, 자신의 업무를 비정규 노동자에게 떠넘긴다거나,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에 함부로 이름을 부른다거나 하는 일 등은 정규직 교사들이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의 자존감을 훼손한다. 이에 대해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정규직들의 말은 스스로 위계에 길들여져 있음을 실토하는 말이기도 하다. 위계에 길들여지고 차별에 대한 감각이 없는 이들이 ‘협력과 존중의 가치’를 가르치기는 어렵다.

또 하나 심각한 문제는 “다른 유형의 비정규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부산교총 관계자는 스포츠 강사나 원어민 선생님 외에 무기계약직이 아닌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지금도 학교 현장에는 방과후교사·행정직·급식노동자·도서관 사서 등 많은 이들이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들도 있고 기간제나 파견으로 일하는 이들도 있다. 학교야말로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고용형태가 복잡하다. 그런데 이 노동자들은 학교에 ‘필요한 일’을 한다. 정규직 교사를 포함해 이 모든 노동자들의 일이 합력을 이룰 때 그것이 ‘교육’이 된다. 이 노동자들의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가 교육을 얼마나 파편적으로 보고 있는지를 실토하는 것이다.

존재가 인식되지 못한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창궐할 때 병원은 의료종사자들이 감염될 위험을 고려해 예방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으나, 이때 아예 고려조차 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었다. 간병인·환자이송 노동자·구급차 운전자 등이었다. 이 노동자들은 병원에서 필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도, 직접 고용된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예방조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결국 이 노동자들은 메르스에 감염됐고 메르스는 급격하게 확산됐다. 고용형태를 달리하는 순간 필요한 노동을 하는 이들이 ‘인식’에서 사라진다. 노동자들은 유령이 된다.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 것’은 노동자들에게 매우 심각한 차별이다.

일터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는 노동자들이 단지 ‘고용계약’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당하고 심지어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부산교총은 이번 공문이 그저 작은 실수였노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건이 일상에 뿌리박은 차별과 배제의 결과물임을 알고 있을까.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차별, 일상의 배제를 드러내야 한다. 호칭·휴게실·작업복·상여금·자리배치·업무분장 등 모든 영역에서 차별과 배제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말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의 차별이 어떻게 비정규 노동자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심지어 상위 위계의 노동자들조차도 위계를 통한 노동통제에 어떻게 순응하도록 만드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의지는 이런 현실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저항을 일상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고 믿는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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