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주부터 국제노동기구(ILO)가 실시하는 ‘판사·법률가·법률 교육가를 위한 국제노동기준’(International Labour Standards for Judges, Lawyers and Legal Educators) 교육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 나의 목표는 국제노동기준 내용을 보다 잘 숙지하고, 한국의 국제노동기준 위반 사건들을 다루는 보다 효과적 활용방안을 배우는 것이었다.

한국은 1991년 ILO에 가입한 후 25년이 지나도록 핵심 국제노동기준인 결사의 자유 관련 협약(제87호·제98호), 강제노동 철폐 관련 협약(제29호·제105호)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거의 매년 ILO로부터 국제노동기준 위반에 대한 권고를 받고 있기에, 이러한 내용을 보다 잘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육과정 첫날부터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전 세계에서 참여한 법률가들(대부분은 상급법원 판사)은 단지 국제노동기준에 대해 알려고 하는 수준이 아니라, 자국의 사법·행정기구에서 국제노동기준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이들은 산업화 수준도 각기 다르고, 국내법적 관행도 서로 다른 법체계에서 활동하지만, 국제노동기준을 활용해 자국의 노동사건을 다루고, 입법과 행정을 변화시키는 데 매우 실제적 관심을 갖고 있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우리 헌법 제6조는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 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한국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노동기준은 자동적으로 국내법으로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법원은 달리 생각하고 있다. 일례로 파업 참가자를 형법상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형사처벌의 위협으로 노무제공을 강요하는 것이 되므로, 국제노동인권기준이 금지하는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계속 제기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파업 참가자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따른 것이므로 우리가 비준한 유엔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나아가 ILO의 강제노동철폐 협약은 우리가 비준한 바도 없고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로도 볼 수 없어 적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이 비준한 국제인권협약이라도 그 적용 문제는 사법부의 주관적 해석에 달려 있고, 국제 관습법으로 승인되는 핵심 노동협약도 한국이 비준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시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번 교육과정에서 우리와 여러모로 대조되는 외국 법원의 사례를 접할 수 있었다. 입법보다 법원의 판례가 더욱 ‘살아 있는 법’인 영미법 국가들은, 국제노동인권협약 비준만으로 곧바로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고 추가적인 국내법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따라서 비준만으로 자동적으로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 우리 법체계보다 국제협약을 적용하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국내법을 해석하거나, 국내법을 보충하는 기준으로 국제노동인권협약을 널리 활용하고 있었다. 이런 관행을 잘 보여주는 것이 영미법계 53개 국가의 상급법원 법관들이 1988년 발표한 ‘방갈로르 원칙(Bangalore Principle)’이다. 국내법이 모호하거나 흠결이 있는 부분을 해결하는 데 국제인권협약을 활용하는 것이 사법부의 역할임을 분명히 했다. 만약 국내법과 국제인권협약이 상충하는 지점이 있다면, 국제인권법 준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사법부가 행정부의 주의를 촉구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노동인권 사건에 있어 유독 편파적이며, 헌법과 국제노동인권기준을 종종 무시하는 우리 사법부에 거의 체념하고 있던 나에게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는 시간들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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