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산업사망은 살인이라는 인식을 고용노동부는 물론 일선 기업에까지 심은 것은 분명한 성과다. 하지만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의 처벌 수위를 높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19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 통과가 20대 국회 가장 큰 과제다.”

매년 산재 사고로 다수의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을 살인기업으로 선정해 온 산재사망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그동안 활동을 되짚어보는 좌담회를 열었다. 공동캠페인단에는 양대 노총과 노동건강연대·매일노동뉴스가 참여하고 있다. 공동캠페인단은 2005년 4월27일 출범했다. 출범식은 서울 여의도 전경련 앞에서 했다. 살인기업은 이듬해인 2006년부터 선정했다.

캠페인단은 폭발 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 6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한화케미칼을 올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공동캠페인단에 4·16연대도 참여해 재해사고를 일으킨 기업을 시민 살인기업으로 선정하고 있다. 지난 26일 서울 마포구 본지 회의실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이진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연대 사무국장이 참여했다. 사회는 연윤정 본지 부국장이 맡았다.

“교통사고보다 국민 관심에서 멀었던 산재 사고”

사회 : 살인기업 선정식이 올해로 11년차를 맞았다. 교통사고 사망자수도 전광판으로 집계해 시민들에게 알려주는데 산재 사망사고는 왜 그러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캠페인을 시작하자고 <매일노동뉴스>가 제안하고 의기투합했던 기억이 있다. 벌써 만으로 11년째라니 감회가 새롭다.

조기홍 실장 : 매일노동뉴스가 공동캠페인단의 산파였다면 노동건강연대는 캠페인단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국노동자대회 때 부스를 차리기도 했다. 당시 사업장 안전문제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는 시기였는데 한국노총도 적절한 시기에 제안을 받은 셈이었다. 살인기업 선정식은 양대 노총의 첫 공동캠페인이었다. 진작에 힘을 합쳐서 했어야 할 일이었다.

사회 : 당시 노동건강연대가 살인기업법 제정의 필요성을 갖고 법제정 운동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동건강연대와 문제의식을 공유했고, 양대 노총과 옛 민주노동당하고 논의한 끝에 캠페인단이 구성됐다.

박혜영 활동가 : 제조업과 건설업으로 나눠 살인기업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건설업 사고가 많아 제조업 산재 문제가 드러나지 않아서였다는 얘기도 있던데 맞나?

조기홍 실장 : 건설업쪽 사망사고가 워낙 많았다. 역대 최악의 살인기업에 GS건설이 두 번, 현대건설이 세 번 차지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산재 사망사고가 건설업쪽에 집중되면서 제조업 현장에서 벌어진 사망사고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떨어질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엄밀히 따지면 건설과 비건설로 나눈 거다.

최명선 국장 : 개인적으로 캠페인단이 노동부 산재 통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제도 변화를 앞서 제기했다고 생각한다. 건설업이 1위를 독차지한 이유는 하청 산재를 합산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제공하는 산재 통계를 벗어나 사망사고를 원·하청 구분 없이 집계했다. 산재 사고가 하청업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드러냈다. 살인기업 선정식은 ‘산재 사망은 기업살인’이라는 인식을 확산했다고 본다.

사회 : 정부 통계가 그렇다면 살인기업을 선정할 때 집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박혜영 활동가 : 엑셀 작업을 하는데 사망자 순위가 자꾸 바뀌니까 집계에만 두 달 정도 걸린다. 매우 공신력 있는 자료다.

조기홍 실장 : 기업들의 항의도 들어온다. 노동부의 중대재해 발생보고 자료가 틀렸을 경우 기업이 문제 삼을 수 있어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꼼꼼하게 자료를 모았다.

“기업 압박 정교한 통계로 막아”

사회 : 초기에는 살인기업이라는 표현을 쓸지 고민도 많았다. 산재 사고를 살인행위로 보기에는 당시 사회적 인식으로는 무리가 아닌가 하는 걱정은 없었나.

최명선 국장 : 캠페인은 산재 사망사고가 노동자의 부주의로 일어난 게 아니라 기업이 안전에 대한 인식이 낮고 투자를 하지 않아서 비롯됐다는 걸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살인기업을 선정하는 4월만 오면 기업들이 살인기업으로 선정되지 않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산재 사망사고는 살인행위라는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점에서 캠페인의 의미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 같다.

조기홍 실장 : 초창기에 산재사망은 살인이다는 문구를 쓰면 기업에서 소송당할까 봐 걱정됐다. ‘산재사망은 살인이다’는 문구를 노동부 산하기관에서 먼저 썼다. 캠페인단의 슬로건이 설득력이 있고, 이런 인식이 사회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진우 국장 : 세월호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대형 재난사고는 우연히 발생하지 않는다. 산재 사고도 노동자가 죽고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방할 수 있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는 건 우리사회의 안전이 취약하다는 증거다. 산재 사고와 시민 재해는 연관돼 있다. 살인기업 캠페인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에 기여한다고 생각한다.

박혜영 활동가 : ‘살인’은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살인기업을 선정하는 취지에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다. 캠페인이 지속돼 기업도 안전관리자를 늘리고 안전에 대한 투자도 확대해야 한다. 아직 할 일이 더 많다.

“산재 없어지도록 제도변화 유도해야”

사회 : 살인기업 선정식이 산재 사망사고에 대한 인식 변화에 기여한 점도 많지만 앞으로 과제도 많을 것 같다.

최명선 국장 : 살인기업으로 선정된 이후 그 순간만 넘기고 보자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잠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난 이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안전보건 시스템의 변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아직도 산재사고가 났을 때 노동자 과실로 몰아가거나 하는 걸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조기홍 실장 : 지금까지는 살인기업을 선정해 명단을 공개하는 게 끝이었다. 살인기업으로 선정되고 기업이 안전보건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는 평가를 하지 않았다. 경영에 타격을 주지도 못했고, 기업은 며칠 '쪽' 팔리고 말자는 식이었던 것 같다. 이제는 기업에 산재 사망사고로 인한 책임을 지우는 행동을 해야 한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20대 국회에서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 이 법에 입장을 같이 하는 국회의원도 늘었다. 법제정이 당론으로 정해지지 않은 데는 의원실 중심으로 법 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선 기업처벌법을 만들고, 고용구조 변화에 맞는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야 한다.

최명선 국장 : 20대 국회는 안전에 초점을 맞춰 활동해야 한다.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처방이 있을 수 있지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 사망을 줄이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이다. 20대 국회에서도 법 제정을 하기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제정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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