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세종 공인노무사(노무법인 함께)

노동현실에서 저임금·장시간 노동 관행을 개선하자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하루빨리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노동자에게도 저녁 있는 삶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리 쉽지 않은 문제다.

이번 칼럼은 법대로 했다가 어쩔 수 없이 오후 6시에 퇴근했던 노동자들에 관한 사연이다. 지역의 중소규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 몇 명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통상임금 판결 이후 언론보도와 인터넷을 통해 통상임금이 뭔지, 통상시급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계산하는지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 통상임금에 눈뜬 몇몇 용기 있는 노동자들은 사용자에게 왜 기본시급을 기준으로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주느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사용자로부터 들어야 했던 말은 "우리 회사는 그런 것 없으니 싫으면 회사를 나가든지, 아니면 법대로 하라"는 거였다.

노동자들은 법대로 했다. 사용자에게 직접 따지며 요구했던 그 용기에 좀 더 용기를 보태 법원에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 그것도 소송 대리인 없이 나홀로 소송을 한 것이다. 사실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통상임금 소송을 노동자들 스스로 하기가 그리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인데 말이다.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하자 사용자는 곧바로 치졸한 보복 조치에 착수했다. 사용자는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에게만 연장·야간·휴일근로를 시키지 않고 오후 6시 퇴근, 주 5일 근무를 시킨 것이다.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6시 칼퇴근을 하게 됐다.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한 노동자들에게는 제대로 된 근로시간단축이었고,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마냥 좋을 수만은 없었다. 연장·특근을 못하면 노동자들이 받아 가는 임금은 고작 월 100만원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노동자들은 오랜 관행으로 월평균 50시간의 연장근로, 80시간의 야간근로, 30시간의 휴일근로를 하는 장시간 노동의 대표 노동자들이었다. 이렇게 연장·야간·휴일근로를 뛰어야 수당으로 70만~100만원의 임금을 추가로 받으면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해 왔다.

사용자는 이것을 노렸다. 월 100만원만 받으면서 2~3년 동안 통상임금 소송을 계속할 수 있는지 두고 보자는 속셈이었고, 백기투항하라는 메시지였다.

먹고사는 문제에서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만 연장근로 등을 배제시킨 것은 근로기준법 제23조에서 금지한 '부당징벌'이라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는 "정황은 그런데…"라면서도 근기법상 연장근로가 합의로 이뤄지고 사용자가 연장근로를 모든 노동자에게 동일하게 시킬 의무는 없다는 억지 논리를 앞세우며 부당징벌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노동자가 버티기는 무리였다. 한두 명씩 소송에서 떨어져 나갔고, 결국 모두 소송을 포기하고 연장·특근을 다시 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렸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참으로 사용자가 너무한 것 같기고 하고, 노동현실을 외면하는 노동위가 답답해 보이기도 한다. 진짜 오후 6시에 칼퇴근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다시금 저임금·장시간 노동의 구조적인 문제 해결에 주목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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