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그래도 20년이 지났는데 뭐라도 달라졌겠죠, 그죠? 거기도 그럽니까? 돈 있고, 백 있으면 무슨 개망나니짓을 해도 잘 먹고 잘살아요?"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시그널>에서 과거의 형사는 현재의 형사에게 묻는다. 미래에는 바뀐 게 없냐고.

머뭇거리던 현재의 형사는 무전기를 통해 얘기한다. "예, 달라요. 그때하고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만들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20년 전과 지금은 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나빠졌다는 것을.

청년실업이 사상 최고를 기록하며 이들은 이 사회를 지옥(헬조선)이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취업한 청년 중 절반 이상이 불안정하고 낮은 임금의 일자리에서 일한다 하니 이들의 냉소가 이해가 된다.

노조파괴 논란을 겪은 유성기업지회 한 조합원이 17일 새벽에 스스로 생을 정리했다. 회사가 노조와 노조 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고발 건수가 무려 1천300여건에 이르렀으니 이를 자살이라 부를 수 없다.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해 아시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로 기록되고 있으며, 20년 전에 비해 상류층의 소득집중도는 다른 아시아 국가보다 16배 정도 더 올랐다.

가난은 대물림돼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아이들의 끔찍한 소식들이 신문 사회면을 채우고 있으니 '미래는 달라졌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다.

이런 암울한 평가는 비단 개인의 생각만이 아니다.

"오늘의 한국노총 앞에 놓인 현실이 지난 70년 선배들이 싸워 왔던 것과 다를 바가 없어 안타깝다."

지난 10일 열린 한국노총 70주년 행사에서 노총 선배는 축사를 통해 노동조합을 둘러싼 상황이 바뀐 게 없다고 얘기했다.

9·15 노사정 합의 파기 이후 정부는 국고보조금으로 한국노총을 압박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받은 소스를 보수언론이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써 대고 있다.

한국노총이 받고 있는 국고보조금은 대부분 교육원과 법률상담소 운영에 쓰인다. 교육원의 경우 연간 4만명의 국내 노동자와 이주노동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법률상담소는 전국 19개 상담소에 33명이 낮은 임금을 받아 가며 1년 동안 4만6천건 이상의 무료 법률상담을 '돈 없고 백 없는' 흙수저 시민과 노동자들에게 제공한다.

청년을 볼모로 노동법을 개악하려 했던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와 시민을 볼모로 총연맹에 복수극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곳곳에 묻어 있는 고단함은 우리를 피곤하게 한다. 노동조합운동에서 나아지는 게 없다는 것만큼 기운 빠지게 하는 말도 없다. '운동'이라는 것은 조금씩 변화·발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벌어진 일들은 미래의 우리들에게 희망의 시그널을 줄 수 있을지에 의문을 갖게 한다. 오죽하면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한 독일노총 관계자가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달린) 중요한 총선에 왜 총력을 쏟지 않나”라는 의구심을 가졌을까. 진실로 다가오는 총선에서 노동자들은 과연 ‘그때’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게 만들 수 있을까.

그러나 만약 내게 미래의 누군가와 연결되는 무전기가 있어도 우리의 미래를 물어볼 자신이 없다. 솔직히 두렵다.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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