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어김없이 돌아왔고, 여지없이 시작됐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위한 노사 간 샅바 싸움 시즌이 돌아왔고, 매년 그래 왔듯이 보수경제지의 트집 잡기도 시작됐다.

지난 21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최저임금으로는 소득분배 개선 취지를 전혀 살릴 수 없다”며 “내년 최저임금의 두 자릿수 이상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경제지는 "교각살우의 우는 피해야 한다"는 사설을 썼다. 소의 뿔을 빼려다가 소를 죽일 수 있다는 뜻인데 무엇이 소고, 무엇이 뿔인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얘기다. 한국 경제라는 소를 살피기 위해 바로잡아야 할 뿔은 경제불평등을 야기하는 낮은 최저임금을 비롯한 낡은 관행들이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 걸맞은 이야기는 "쇠뿔도 단김에 빼라"다.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최저임금을 주는 곳은 중소·영세 사업장들이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오르면 채용을 줄이거나 감원을 해야 하며 급기야 사업을 접을 수밖에 없어 실업이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보수언론에게는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데 시급 6천30원이 적정하지 않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오직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있다는 가부장적인 사고만 있을 뿐이다.

최저임금의 목적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데 있다(최저임금법 제1조). 즉 생활이 안정되지 않고 노동력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보장하지 못하는 임금은 최저임금이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학자였던 고 정운영 선생은 "최저임금이나마 제때에 마련하기 위한 기업인들의 수고와 노력을 폄하하지는 않는다"며 "재벌 위주로 운영되는 금융관행에서부터 하청업체에 행사하는 대기업의 횡포에 이르기까지의 허다한 차별과 제약이 그들의 곤란을 가중시키므로 싸워야 할 대상은 이런 외부의 장애이지, 종업원에 대한 임금 억제가 아니다"고 무려 24년 전에 얘기했다.

사용자와 그들의 대변지가 24년 동안 최저임금을 볼모로 살포해 온 실업의 공포, 경제위기의 공포는 최근 여러 사례와 연구로 깨지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한 독일의 경우 질 나쁜 일자리가 20만800개 줄어든 반면 사회보험 적용이 되는 괜찮은 일자리가 71만3천개 늘어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독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1만3천원이다.

세계적인 석학 앨런 매닝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교수도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다는 주장은 주류경제학의 기초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실제 경험적 연구에서는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기에 이제 그동안 휘둘러 온 조자룡 헌 칼은 그만 거둘 때가 됐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은 한 가지 더 있다. 예상컨대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리고 있는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최저임금 몇십 원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노동계의 아쉬움과 사용자의 불만으로 혹은 그 반대로 끝이 날 것이다. 매년 그래 왔듯이.

알면서도 이 상황을 반복하는 노동조합운동에도 자성이 필요하다. 혹시 최저임금 인상 구호가 대의와 명분을 위한 치장에 불과하지는 않았는지, 으레 지나가야 하는 1년 행사가 아니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단언컨대 여론 지지를 받는 싸움을 하고자 한다면, 그동안 이기는 싸움에 갈증을 느껴 왔다면 최저임금 투쟁에 좀 더 단호히 나서야 한다. 이 반성과 다짐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글을 읽으며 뒷목이 가려움을 느끼는 바로 당신의 몫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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