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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고-한국형 노동이사제를 꿈꾼다 ①]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을 잇는 연결고리 '노동이사제'윤효원 매일노동뉴스 글로벌 에디터 (industriall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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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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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정부를 15년으로 본다. 당은 달랐지만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연속선에 있었다. 이명박-박근혜는 자유주의 정부의 단절이고 우익독재로의 회기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연장이다. 물론 노태우는 우익독재 체제와 자유주의 체제 사이의 이행기이자 분절점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띤다. 노태우의 관료였던 김종인이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 돼 박근혜 정권과 맞서는 작금의 현실은 이행기에 이중적 역할을 했던 노태우 정권의 특성을 떠오르게 만든다. 이명박 정권은 군과 정보기관의 선거 개입과 공작 정치를 허용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등에 칼을 꽂았고 우익독재 회귀의 디딤돌이 됐다.

자유민주주의가 좌절한 이유

15년간 이어지던 자유민주주의가 우익독재로 회귀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자체의 한계를 이유의 하나로 들 수 있겠다.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노동자·민중에게 확대하길 두려워했다. 대신 군부가 물러간 공백을 장악한 재벌과 관료의 자유를 확대함으로써 민주주의 기반을 스스로 허물었다.

1987년 체제를 수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청년학생운동은 독자적 사회계급은 아니었기에 이후 해체 경로를 걸었다. 노동자 대투쟁으로 등장한 노동계급은 ‘즉자적’ 수준에 머물렀고, 의식적으로 미성숙했다. 인력과 자원은 부족했고 전략과 전술은 미비했다.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시도됐으나, 주체적 역량 부족 문제를 극복할 순 없었다.

자유민주주의가 사회민주주의로 확장되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는 ‘자유’와 ‘민주’가 노동자 민중에게 확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결사의 자유와 단체교섭권이 완전하게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는 불법화됐다. 평범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에는 감시와 사찰, 위협과 공격이 뒤따른다. 단체교섭 의제조차 행정부와 사법부의 제약을 받는다.

이제 노동운동은 이슬람국가(IS)와 동급의 테러조직으로 간주된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제87호와 제98호의 비준은 정치적 의제조차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일터 안에서 자본가의 자유와 민주는 확대된 반면 노동자의 자유와 민주는 위축돼 왔다. 노동조합은 미조직 노동자와 무노조 사업장으로 확대되지 못하고,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서도 약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는 자유주의 체제의 절정이었다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강화됐다. 특히 노무현 정권은 재벌-관료 연합세력의 압력에 굴복해 노동자의 단결권과 교섭권 확대를 포기함으로써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를 제도적으로 개혁할 기회를 무산시켰다.

"있으나 마나 근로기준법"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유주의 정권들이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의 실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근기법은 노동조합 유무에 상관없이 전체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법이다. 일터에서 벌어지는 폭력·착취·차별을 줄임으로써 노동자들이 보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노동조건과 환경을 만드는 게 법의 목적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계기로 사회 전체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사업장 안의 폭력·착취·차별은 97년 말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노동운동이 위축되자 다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제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도 독기를 뿜어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이 필(feel) 꽂힌 ‘일반해고 도입’과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는 근로기준법 무력화를 향한 재벌-관료 합작품의 완성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근기법의 보편적 실현에 관심이 없기는 조직노동도 마찬가지였다. 단체협약의 보호를 받으면서 근기법의 중요성을 망각했던 것이다. 근기법의 보편적 적용을 위한 캠페인은 구호에 그쳤을 뿐 제대로 실현된 게 없다. 근기법상 사문화된 조항을 개선하고 그 내용을 현대 경제에 맞게 재구성하려는 노력도 그랬다. 오히려 근기법을 무시하고 스스로 어기기까지 했다. 주 68시간 노동시간이 대표적이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공유가 조직노동의 중심사업이 된 적은 없었다. ‘주 68시간 행정해석’은 김대중 정권의 노동부가 만들었고,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정해석을 고집하는 데에선 노무현 정권도 별 차이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 통계는 노동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그것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수치였다. 주 40시간 노동제가 돼야 할 주 5일제는 “일주일은 7일이 아니라 5일”이라는 새로운 시간 개념의 법률적 근거로 전락해 버렸던 것이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우익독재 체제 시기에 공장 문 앞에서 멈춰 섰던 민주주의는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공장 문 안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시기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까지 십 년을 넘지 못했다. 경제위기 상황에서 과학적인 전략과 효과적인 전술 마련에 실패한 노동운동은 공세기와 수세기를 구분하지 않고 공세기에 익숙했던 전략·전술을 반복함으로써 조직노동은 물론 전체 노동자의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데 실패했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출발점은 근기법의 보편적 실현이었다. 그러나 미조직 사업장에서의 근기법 감독은 노동조합운동의 기본 임무가 아니라 근로감독관의 관료적 업무로 전락했다. 노동운동 주체의 측면에서 보면 전국적·산업적 전망을 갖지 못한 기업별노조주의의 한계였다. 노동가요의 한 대목처럼 근기법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지 못한 90%의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있으나 마나 근로기준법”으로 전락해 갔지만 노동조합은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노동자 민주주의 토대 '노동이사제'

근기법과 더불어 사업장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또 다른 수단은 노동자 경영참가였다. 97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제정으로 출발하는가 싶었던 노동자 경영참가는 이 법에 가장 우호적이어야 할 조직노동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민주주의는 정보-협의-참여-공동결정을 통해 이뤄진다. 자본가가 독점하는 정보를 노동자들이 공유하고, 노동조건과 기업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노동자가 자본가와 협의하며, 자본가만의 의사결정구조에 노동자들이 참여해 중요한 안건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것이 노동자 경영참가의 요체다.

조직노동이 근기법의 보편적 실현과 노동자 경영참가 확산에 앞장섰더라면, 그 성과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업장을 넘어 무노조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도 공유됐을 것이다. 사업장 안에서의 노동자 민주주의 확산은 노동조합 조직 확대로 이어진다. 노동자 민주주의 확산과 노동조합 조직 확대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강력한 기반이 된다. 이를 통해 취약한 한국 민주주의의 기초를 튼튼히 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재벌-관료 지배체제의 강력한 저항세력으로 자리 잡아 우익독재 체제로의 회귀를 막았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조직된 사업장은 노동조합의 일상활동과 단체교섭을 통해 일정 수준에서 근기법 적용과 노동자 경영참가를 실현해 왔다. 안타깝게도 미조직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없다는 이유로 근기법을 비롯한 노동법 적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근로자참여법 역시 그림의 떡이었다. 이런 점에서 근기법과 근로자참여법 실현을 위한 캠페인은 조직노동과 미조직노동을 잇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그 연결고리를 실현할 주체의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캠페인이 나가야 할 방향은 노동이사(worker director) 도입이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업장과 기업의 정보를 공유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동이사는 근기법을 비롯한 각종 법규의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해당 사업장과 기업 노동자들을 대표해 자본가와 함께 회사 정책 수립과 결정 과정에 참여해 회사 조직 안에서 노동자 목소리를 대변한다. 일터 안에 법치주의(the rule of law)를 실현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양을 확대하는 동시에 질을 향상시킬 것이다.

한국형 노동이사제를 향하여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나라는 많다. 노동이사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우선 노동조합(산별노조)이 아닌 별도 종업원단체를 사업장 안에 구성해 그 단체의 대표를 노동이사로 임명하는 독일과 네덜란드 등의 서유럽 방식이 있다.

반대로 별도 종업원단체를 두지 않고 노동조합을 종업원대표체로 인정해 산별노조의 단위조직 대표자를 노동이사로 인정하는 북유럽 방식이 있다.

전자는 노동자 대표성과 종업원 대표성을 분리시키는 이원 체제(dual system)고, 후자는 노동자 대표성과 종업원 대표성을 하나로 묶은 일원 체제(single system)다. 원래 노동조합은 이원 체제에 반대했으나,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정이라는 역사적 특수성과 맞물리면서 미군이 점령했던 독일과 네덜란드에는 노동조합과 종업원 조직을 분리한 이원 체제가 도입됐다.

한국 상황에 이원 체제가 맞는지 일원 체제가 맞는지는 많은 연구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서 기업 조직의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을 개선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한국 민주주의 토대를 튼튼히 할 제도적 개혁을 이룬다는 점에서 노동이사제의 도입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앞으로 10회에 걸쳐 매달 한 차례 서유럽과 북유럽을 중심으로 선진국 노동이사제를 소개한다. 올해 4월 총선과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등 역동적으로 펼쳐질 정치일정 속에서 노동이사제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논의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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