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산별노조의 권한인 조직형태변경결의절차를 임의로 진행해 금속노조에서 탈퇴한 것은 무효라고 본 원심을, 대법원이 파기해 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산별노조 산하 지회가 독립성을 갖춰 민법상 사단 정도로 볼 수 있으면, 형식과 관계없이 노동조합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결의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얼핏 들으면 유연하고 합리적인 사고인 듯 보이지만 추론 과정도 위법하거니와 그 결과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우선 큰 그림에서 보자면 다수의견에 따를 때 노동조합 안에 노동조합이 생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 정파그룹이든, 친목단체든, 사우회든 간에 다수의견이 제시하는 몇 가지 요건만 미리 만들어 놓는다면 실질상 노동조합으로 인정돼 노조법상 그 행위주체가 노동조합으로 돼 있는 권리 및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실질과의 타협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양보할 수 없는 선은 있는 것이다. 그 선은 법적안정성과 입법 목적이라는 두 가지 대원칙 위에 놓여 있다.

우선 법적안정성 측면에서 보자. 하부조직인 지회가 노조법상 노동조합의 권리와 권한을 행사하게 되면 산별노조로서는 권리박탈 또는 이익침해를 당한다. 산별노조 입장에서는 지회가 자의적으로 조직형태변경결의를 하여 산별노조에서 탈퇴하는 것보다 더한 이익침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이처럼 누군가에게는 편의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손해가 크게 발생하는 경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일단 법률을 엄격하게 문언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사법의 대원칙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서는 조직형태변경주체를 '노동조합'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지회를 민법상 비법인사단으로 보더라도 조직형태변경의 주체가 될 수 없음은 움직이지 않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민법에서도 법인 또는 사단은 합병·분할, 조직형태변경이 가능하지 않다. 노동조합이 합병·분할, 조직형태변경을 할 수 있는 것은 노조법에 특별히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은 민법에 대한 특별법으로서 법체계상 우선 적용된다. 그런데 다수의견은 노조법 사안에 있어 무리하게 민법을 끌고 들어와서 지회에 민법상 사단의 지위를 부여하더니 민법에서는 사단에게 인정하지도 않는 조직형태변경의 권한까지 씌워 주면서 논리적 대참사를 빚고 말았다. 양(羊)을 소(牛)라 해석해 양의 젖을 우유로 명하는 격이 아닐 수 있는가.

다음으로 법률을 문언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에는 입법의 목적 또는 취지라는 ‘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대법원 판결문 중 대법관 5인의 반대의견에도 나와 있다시피,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결의 관련 조항의 입법취지는 입법 과정을 주도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에 의하면 “기업별노동조합이 산업별 노동조합으로 용이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노동조합 조직력을 확대하고 교섭력을 높여 사용자의 개입여지를 줄이고 노동 3권을 효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입법이었다.

그런데 다수의견을 따를 경우 산별노조를 해체하는 것이 용이해지고 나아가 촉진까지 됨으로써 입법목적과 정반대인 디스토피아(dystopia)적 결과가 초래된다.

이에 법규정의 문언해석과 입법목적에 따라 금속노조의 소송제기는 필연적이었다. 그렇다면 법원은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결의의 주체가 될 수 없는 발레오만도지회의 결의가 법률에 어긋난다고 간단히 평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1심과 2심은 그리했다.

법적 안정성(법문언 해석)과 입법목적에 대해 살펴봤다. 다음으로 다수의견이 기업별노조로서의 '실질'을 판단하는 기준을 들여다보면 이 또한 부당함을 알 수 있다. 이를 지적한 반대의견을 그대로 인용한다.

“노동조합으로서의 실질을 인정하려면 단지 근로자로 구성된 조직이라는 단체성이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대외적인 독립성 내지 자주성까지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인데, 산업별 노동조합의 지회 등이 산업별 노동조합에 대한 관계에서 그러한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편 지회의 조직형태변경결의를 무효로 보는 것이 형평에 어긋나는가하는 쟁점이 있다. 지회는 기업별노조로 전환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를 개별적으로 탈퇴할 수 있도록 안내하거나, 새로운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길이 분명 있었고 원천 차단되지 않은 이상 조직형태변경결의가 무효가 되더라도 지회 입장에서 억울하다고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반대의견의 논거 중 중요한 한 가지는 산별노조를 기업별노조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정책적인 보호필요성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첫째, 지금까지 산별노조하에서 각종 혜택을 누리던 지회 조합원들 중 기업별노조로 전환하자는 이들이 다수라도, 그 반대로 산별노조에 남아 있겠다는 이들의 의사는 여전히 존중돼야 한다. 둘째, 산별노조 자체가 가지는 효용인데, 즉 “산업별노동조합 체제는 초기업적 운영에 따라 노동조합 간부들과 사용자의 유착을 방지하는 한편 재정적 부담을 완화하는 등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제고하고 단체교섭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며 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의 해소 등 산업별 근로조건의 균등화를 달성하는 데 적합한 장점이 있다. 다수의견처럼 산업별노동조합의 지회 등이 조직형태변경 절차를 거쳐 기업별노동조합으로 전환하는 것을 폭넓게 허용하면 산업별노동조합 체제의 의미 있는 장점을 살릴 수 없는 결과를 야기하고 앞서 언급한 산업별노동조합 체제의 정립이라는 입법목적과도 조화를 이루기 어렵게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부당노동행위를 급격히 촉발시킬 수 있다.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에 대한 노조탄압 공작은 그 악랄하기가 노동사건 중 손꼽을 정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창조컨설팅'이라는 불법 노무자문 집단이 노조파괴를 계획해 실행한 사실이 드러나 대표노무사는 자격을 박탈당했다. 당연히 사업주와 노무사는 기소됐다.

일련의 부당노동행위 중 사측이 가장 많이 지원하고 개입한 것이 바로 조직형태변경결의였다. 다시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될 테지만 이번 대법원 다수의견의 영향으로 인해 산별노조 탈퇴가 용이해지는 방향으로 판결이 확정되면 전국 각지에서 민주노조 탈퇴공작과 노동인권 탄압이 줄을 이을 것이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법원칙과 정의에 어긋나 기울어졌고 노사갈등의 불씨에 풀무질을 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법관의 최대 명예손상은 국민으로부터 의심받는 것”이라고 했다. 사법(司法)이 정치화·우경화되고 있다는 걱정은 시기상조라는 법률가들, 시민들이 아직은 많이 남아 있다. 고등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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