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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경제전망 ②] 재벌개혁론 개혁이 절실하다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경제위기가 심해지는 만큼 재벌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쟁도 뜨거워질 것이다. 그런데 올해 재벌문제는 이전과는 많이 다를 것으로 보인다. 재벌의 상태가 이전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재벌개혁의 핵심의제는 주로 성장과실 분배문제였다. 세계 금융위기가 몰아쳤던 1년 정도를 제외하면 30대 재벌, 특히 수출재벌들은 2000년대 내내 성장을 멈추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장의 낙수효과가 없다 보니 재벌부문과 나머지의 격차가 커졌다. 이 시기 재벌개혁은 이런 이유로 금산분리, 순환출자 규제, 내부거래 규제 같은 독점 규제 정책이나, 법인세 인상, 원·하청 상생제도, 중소기업 보호업종 확대 같은 재분배 정책에 집중됐다.

그런데 현재 재벌 상태를 보면 성장 낙수효과가 아니라 손실 낙수효과를 규제하는 정책이 시급해 보인다. 2014년 재벌 중의 재벌인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자기자본수익률이 한 자릿수에 그칠 정도로 줄었고, 나머지 재벌들의 자기자본수익률 평균은 2% 정도에 불과했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난해에는 재벌들의 매출과 수익이 더욱 심하게 줄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인정하듯이 단기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장기 저성장 효과로 오랜 기간 계속될 문제다.

이렇다 보니 당기순익 자체가 크게 줄어 법인세를 인상해도 국가가 더 받아 낼 돈이 많지 않고, 생산물량 자체가 줄어 중소기업들의 사활적 과제가 공정거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물량수주가 돼 버렸으며, 내수가 얼어 자영업자들은 보호업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생존권 벼랑에 내몰리게 된다. 또한 여러 재벌들이 재무위기에 빠져 과도한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 시급하게 이야기되는 상황이다.

재벌개혁에 관한 기존 정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얘기다. 반면 현존하는 노동시장이나 구조조정 제도는 재벌들이 자신의 손실을 정부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한국 재벌들은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 과정에서도 그랬듯이 손실에서는 기가 막히게 낙수효과를 만들어 낸다.

박근혜 정부가 행정지침으로 밀어붙인 일반해고는 이미 현장에서 노동자에 대한 매우 큰 해고 압박으로 작동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 노동자 인력감축은 몇 배 규모로 2차, 3차 하청으로 이어진다. 결국 재벌 손실을 전체 산업 노동자들이 짊어지는 셈이다.

정부가 재입법을 요구하고 있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워크아웃법)은 재벌 총수의 경영권 보호수단에 다름 아니다. 경영진과 채권단이 협약으로 지분·경영전략·채무조정을 합의하는 것인데, 최근 금호그룹이나 동부그룹 사례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워크아웃은 노동자들과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것이다. 총수는 경영권을 보장받고, 채권단은 빚을 빨리 받아 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재벌 총수와 금융기관은 손해가 크게 없고, 노동자들과 하청기업들만 죽어나는 게 워크아웃 제도다. 통계를 봐도 워크아웃을 시행한 기업 대주주 중 80%가 경영권을 보장받았다. 대부분의 대기업 워크아웃에는 산업은행이 관여한다. 따지자면 정부가 국민 돈으로 재무위기에 빠진 총수 경영권을 보호해 주는 형국이다.

인수합병이나 회사 분할을 통한 구조조정 절차를 간소하게 해 주는 기업활력제고법은 대놓고 대기업이 손실 전가를 하겠다는 말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재무위기에 빠진 대기업들이 특정 사업부문을 분리해 폐업시켜 버리거나, 대규모 인력조정이 동반되는 인수합병을 쉽게 할 수 있게 된다. 노동자와 하청기업들은 이후를 준비할 틈도 없이 대기업 경영진 정책에 따라 생사가 좌우된다. 정부가 최근 기업 재편에 대해 노조가 쟁의하는 것을 엄격하게 규제하겠다는 것도 일맥상통하는 정책이다.

이제 재벌개혁론은 과세나 공정거래 같은 성과분배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해고·구조조정·기업합병과 분할·정부 금융지원에 관한 규제여야 한다. 현행 제도는 재벌의 손실을 노동자와 국민이 짊어지도록 돼 있다. 이제 재벌 부실을 총수가 짊어지도록 하고, 정부가 지원할 경우 총수가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손실을 가장 크게 전가받는 노동자들이 총연맹이나 산별노조를 통해 재벌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산업적·전국적 교섭제도를 법으로 보장해야 한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손실 전가에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이 재벌들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현 시기 재벌개혁의 핵심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대폭적인 개정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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