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윤정 기자

가사노동자 상당수가 장시간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면서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것으로 나타났다. 성희롱이나 인격모독 같은 부당대우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근로기준법 적용제외 조항 삭제 등 가사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제도개선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1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인권교육센터별관에서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 인권상황 실태파악 및 보호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올해 3~8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가사노동자(가사·간병·육아도우미) 507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의뢰한 결과다.

◇가사노동자 근로조건 사전협의 없어=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날 주제발표를 통해 “가사노동자는 근무시간·업무내용·휴게시간·초과근로시간 등 근로계약 주요 내용을 사전에 협의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며 “업무상 부상시 치료에 대한 사전협의가 가장 낮았다”고 밝혔다. 업무상 부상 관련 사전협의를 한 가사도우미는 비영리기관 소속이 10.7%, 영리기관 소속이 8.5%에 불과했다. 간병인도 4.0%·6.0%, 육아도우미도 22.4%·23.6%에 그쳤다.

가사노동자 중 가장 장시간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군은 간병인이었다. 방문형 가사도우미는 주당 22.5시간 근무에 시급 1만1천359원을 받고, 육아도우미는 주당 34.1시간 근무에 시급 1만2천216원을 받는 반면 방문형 간병인은 주당 54.1시간 일하는데도 시급이 7천368원에 그쳤다. 구 부연구위원은 “가사·육아도우미 시급이 낮지 않지만 근로시간이 유동적이어서 월평균 임금이 낮다”며 “입주형 간병인의 경우는 주당 72시간, 월 170만원을 받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성희롱·인격모독 등 부당대우 노출=가사노동자들은 사회보험에서도 배제돼 있었다. 국민연금 직장가입률이 간병인 2.9%·가사도우미 4.9%·육아도우미 9.2%, 건강보험 직장가입률은 간병인 16.9%·가사도우미 16.8%·육아도우미 18.4%로 조사됐다. 인격모독을 포함한 부당대우는 훨씬 심각했다. 성희롱 경험은 간병인이 30.8%로 가장 높았고 가사도우미는 5.8%, 육아도우미는 0.7%였다. 인간적인 무시를 당한 경험은 간병인 32.7%·가사도우미 18%·육아도우미 14.5% 순이었다. 과도한 감시 경험자는 간병인 31.4%·가사도우미 28.3%·육아도우미 17.9%로 나타났다.

일자리 연계 시스템도 불안정했다. 희망하는 만큼 일하지 못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일거리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가사도우미 43%·육아도우미 23.4%·간병인 20%로 조사됐다. 이 밖에 가사노동자 직무교육 비중은 비영리기관이 영리기관을 크게 앞섰다. 가사도우미 교육 여부는 비영리기관 76.4%·영리기관 23.6%, 간병인은 비영리기관 55.6%·영리기관 44.4%, 육아도우미는 비영리기관 65.1%·영리기관 34.9%로 나타났다.

◇"근기법 적용제외 삭제해야"=가사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한 정책으로 근기법 적용제외 조항 삭제와 국제노동기구(ILO)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에 관한 협약' 비준을 제안했다. 구 부연구위원은 “적용제외 조항 삭제로 가사노동자가 근기법 적용을 받도록 해야 한다”며 “안정적 일자리 확보를 위해 저비용 일자리 연계시스템을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건전한 사용자 육성을 주문했다. 그는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가칭)가사종사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특별법)에서 공급기관 인증절차를 엄격히 해야 한다”며 “가사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공급기관·이용자대표와 교섭하도록 집단교섭 제도를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윤정향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상임대표·윤지영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가 참석했다.

한편 인권위는 가사노동자 실태조사 결과를 토대로 가사노동자 입법적·정책적 보호방안에 관한 제도개선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