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이 구직급여 수준을 높이는 대신 수급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을 추진하는 데 비판이 일자 고용노동부가 법 개정 이유로 '노동시장 건강성 제고'를 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고용이 불안하고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우리나라 현실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6일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법 개정안 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부터 1인당 평균 구직급여(실업급여)가 올해 496만3천원보다 146만7천원 많은 643만원이 된다. 개정안에서 퇴직 전 평균임금의 50%인 구직급여를 평균임금의 60%로 올리고, 지급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확대했기 때문이다. 반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요건(기여요건)은 강화된다. 현재는 퇴직 전 18개월(기준기간) 동안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실업자라면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다. 개정안은 퇴직 전 24개월 동안 270일을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구직급여 수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구직급여를 받기 위해 6개월만 일하는 노사관행 또는 도덕적 해이를 막겠다는 것이 노동부의 설명이다.

최소 8% 수급권 박탈 … “신청률은 증가”

기여요건을 강화한 대목에서 논란이 불거진다. 구직급여를 받기 어렵게 만들면 단기간 일하면서 기여요건을 채우지 못한 아르바이트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수급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부도 일부 수급권 박탈자들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노동부가 고용보험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추산한 결과 개정안을 시행할 경우 2012~2014년 연평균 77만3천명이었던 구직급여 신청자 중 6만2천명(8%)이 수급권을 잃는다. 구직급여 신청자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실제 수급권 박탈자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구직급여 보장성을 강화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수급자는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노동부 설명이다. 노동부는 구직급여 지급기간을 30일 늘렸던 2000년 8.8%였던 퇴직자 대비 구직급여 신청률이 1년 뒤에 10.8%로 2.0%포인트 증가한 점을 감안해 신청자가 10만4천명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결과적으로 수급요건을 까다롭게 하더라도 보장 수준을 높이면 고용보험 가입자가 4만2천명 늘어난다는 것이다.

권기섭 노동부 고용서비스정책관은 “구직급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되는데도 빨리 재취업을 하거나 급여수준이 낮아 구직급여 신청을 기피했던 이들이 혜택이 확대된 구직급여 신청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권 정책관은 “고용보험가입(기여) 기간과 함께 기준기간도 늘렸기 때문에 실제 기여기간은 22일 정도만 늘었다”며 “다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6개월만 일하는 관행이 있는 공공근로 고령자들에게는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와 비교 불가, 불안한 노동시장 고려해야”

하지만 이런 노동부 분석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노동부 예상대로 실업급여 혜택이 커지면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보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업급여 신청자가 느는 것은 제도 영향보다는 경기변동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신청률이 증가하더라도 이를 제도 혜택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신청률이 오르는 현상은 비자발적 이직자와 실업자의 증가, 대상 확대 때문”이라며 “실업급여제도가 안착화한 덕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도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우리나라의 기여요건이 외국보다 지나치게 완화돼 있기 때문에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실제 상당수 국가가 우리나라보다 기여요건이 훨씬 까다롭게 설계했다.

독일은 이직 전 24개월 간 12개월을 일해야 실업급여를 받는다. 스페인(72개월·12개월)·스위스(24개월·12개월)도 수급요건이 까다롭다.

하지만 이들 나라와 달리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우리나라에서 기여요건을 강화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다.

전체 실업자 중 35%만 실업급여 혜택을 받는 우리나라와 달리 네덜란드·스위스는 80% 이상의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독일은 실업부조와 실업급여를 합치면 100%의 실업자들이 제도 혜택을 받고 있다.

은 의원은 “우리나라가 수급요건을 강화해 구직급여 수급 가능성을 줄여야 할 때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노동전문가 역시 “우리나라 실업급여 기여요건이 외국보다 관대한 것은 맞지만 노동시장이 불안정하다는 예외적인 상황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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