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혹시나' 뒤에는 '역시나'가 반드시 따라오는 기막힌 현실이 또 반복됐다.

'이런 시급' 5천580원은 내년부터 6천30원으로 이름이 바뀐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자신들이 내놓은 심의촉진 구간 6.5%(5천940원)~9.7%(6천120원)의 정확히 가운데인 8.1%를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로 확정했다.

이 수치는 노동계측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8천100원보다 2천70원이 적고, 사용자측이 제시한 5천715원보다는 315원이 많은 액수다. 10원짜리도 보기 힘든 요즘, 1원 단위까지 제시하는 사용자측의 알뜰함이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사실 노동계는 내심 이번 최저임금 협상에 많은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혹시나'에 무게가 실린 것은 지난 3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올해 최저임금을 빠른 속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그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는 최저임금이 결정되기 전날인 이달 7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적정 수준의 임금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쯤 되니 ‘아, 이번만큼은 진짜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순진도 하셔라, 그 말을 모두 믿었단 말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래요, 믿고 싶었어요. 그만큼 우리는 절박하니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며칠 전 언론에 나왔던 한 시간 일하고 따뜻한 밥 한 끼 가격도 받지 못하는 아르바이트의 처지를 쓰레기봉투로 풍자하는 청년들의 모습이 혹자에게는 유치해 보였을 수도 있지만 당사자들은 이 처절함을 표현한 것이리라.

최저임금이 결정된 그날, 여당의 원내대표는 사퇴(라고 하지만 사실상 퇴출)의 변으로 헌법 1조1항을 거론하며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헌법에는 ‘민주공화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일 수 있는 조건들도 함께 나열돼 있다.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32조는 “국가는 사회적 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최저임금제가 필요하다고 적혀 있다. 그리고 34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밝힌다.

적정임금 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고작 450원 인상이고,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국민의 권리가 하루 일당 3천600원 증가라면 노동자들은 이런 국가에 어떤 기대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헌법은 8일 입법기관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두 번 내동댕이쳐진 셈이 됐다. 아, 법이 무슨 죄인가. 사람이 죄인 것이지.

새로운 ‘이런 시급’ 6천30원과 관련한 많은 유감 중 하나는 공익위원들에게 향한다. 필자는 지난 칼럼에서 "당신들이 얼마나 자율성을 가질 수 있겠나, 국가가 나서서 획기적으로 올려야 한다"고 쓴 바 있다.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공익위원인데 450원 인상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심하다고 느끼지 않나. 애들 ‘뽑기’도 500원짜리를 요구하는 세상이다.

영화 <소수의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증거를 조작했다가 검사 옷을 벗게 된 홍재덕 검사는 그의 증거 조작을 폭로한 윤진원 변호사에게 말한다. “국가라는 건 말이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고, 누군가는 봉사를 하고. 결국엔 그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거야.”

이 대사를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최저임금위 공익위원들에게 묻고 싶은 얘기 하나.

"공익위원 여러분, 혹시 지난 심의 기간 동안 당신들은 국가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나요. 그렇다면 그 봉사는 700만 저임금 노동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지요."

한국노총 홍보선전본부 국장 (labornew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