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공인노무사
(반올림 지원 노무사모임)
산업재해 입증책임이 노동자측에 있어 부당하다는 비판은 삼성백혈병 이슈가 시작된 7년 전부터 나왔다. 그러나 법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다.

회사가 산재 증명에 필요한 정보를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비공개하고 고용노동부도 같은 이유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산재인정이 어렵다는 것도 오래된 지적이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갑갑한 현실에 더해 최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의 산재신청 사건과 관련한 역학조사(전문조사) 과정에서 신청인 참여권을 박탈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신청인 현장방문 막는 삼성의 ‘반칙’

역학조사 과정에서 신청인 참여가 배제된다면 사업주가 작업환경을 조작하더라도 연구원은 이를 알 수가 없다. 역학조사에 신청인(대리인)이 담당 연구원과 함께 사업장 조사에 참여해야 작업환경이 그대로인지 아닌지, 바뀌었다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연구원에게 설명이라도 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삼성은 그동안 역학조사시 신청인 대리인의 참여를 허용하지 않아 왔다.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직업병 사건을 대리하면서 역학조사 때 현장방문을 못한 곳은 삼성뿐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백혈병 등 직업병 사건을 대리해 왔지만 삼성만 가 보지 못했다. 필자와 함께 반올림 지원 노무사모임(반지모)에서 활동하는 다른 노무사들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현행법에 역학조사시 신청인의 참여 보장이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이유, 즉 산업안전보건법에 역학조사시 보험가입자(사업주)와 근로자대표의 참여 보장만 명시돼 있다는 이유로 대리인의 참여를 배제해 왔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사업주가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해 왔다.

신청 당사자마저 출입 불허

그런데 최근 삼성(삼성디스플레이)은 필자가 대리하고 있는 백혈병 피해자 역학조사 과정에서 당사자 본인의 참여까지 불허했다. 삼성의 이 같은 조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16조(사업주의 조력) 위반을 넘어 신청인의 법률상 입증책임을 현저히 방해하는 것으로 명백한 산재 청구권 침해행위다.

또한 역학조사 기관은 삼성 관계자 말 한마디만 듣고 삼성만 참여시킨 채 반쪽짜리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결국 필자는 신청인과 상의 끝에 근로복지공단과 한국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중단하고 시정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법률에 신청인 조사 참여권 규정해야

산재를 조사할 대 신청인과 대리인의 참여권 보장 문제는 아무런 실효성도 없는 근로복지공단 내부 규정으로 규율할 사안이 아니다. 관련법령을 개정해 명확히 규율해야 한다. 재해자 권리를 막고 있는 삼성과 이를 방관하는 정부의 산재행정이 돌아오는 국정감사에서 심도 있게 논의돼 법률 개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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