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기자
산업재해 역학조사에 산재 신청인과 대리인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노동자가 재해의 업무 연관성을 입증해야 하는데 정작 역학조사에는 참여하지 못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남부지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직업병 피해 당사자마저 회사 거부로 현장 조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며 “역학조사에서 신청인측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 등에서 근무하다 직업병을 얻어 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19명 중 당사자나 유족이 역학조사에 참여한 사례는 6건에 그쳤다. 대리인이 역학조사에 참여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예컨대 지난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산재를 신청한 김아무개씨의 역학조사가 진행됐지만 김씨와 대리인인 이종란 공인노무사는 사업주의 거부로 역학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매그나칩반도체에서 근무하다 갑상선암에 걸린 장아무개씨도 같은 이유로 역학조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공단은 그러나 2013년 요양업무처리규정을 개정해 산재 신청인과 산재 보험가입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역학조사 참여를 허용했다. 지난 4월에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질의에 “현장조사가 필요한 경우 신청인 또는 대리인에게 조사일시 및 장소 등을 미리 알려 참석 기회를 보장한다”고 답변했다.

반올림은 “산재 신청인과 대리인이 참여하지 않는 현장조사는 사업주 편 들기 조사에 불과하다”며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사업주가 보여 주고 싶은 작업환경만 측정할 게 아니라 피해자가 의견을 들어 달라진 작업환경이 없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올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는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직업병 피해자가 일할 당시 근무환경이 달라져 있는 경우가 많다”며 “업무 연관성과 작업환경의 변화를 정확히 조사하기 위해서는 신청인과 대리인 참여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