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형마트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이유순(43, 마이크 든 이)씨가 15일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인상 촉구 기자회견에서 현장발언을 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정기훈 기자
“고1인 첫째 딸이 공부를 잘해요. 그런데 학원 한번 못 보내 줬어요. 중1인 둘째 아들은 한창 먹는 걸 좋아할 때인데, 치킨 한 마리 시켜 달라는 말에 몇 번을 따지고 생각해야 하는지….”

대형마트 입사 7년차 직원이자 외벌이 가장인 이유순(43)씨는 이 대목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목소리가 떨리더니 이내 눈물을 보였다. 옆에 선 동료들이 손수건을 건네자 뒤돌아 눈물을 훔쳤다. 떨리는 어깨가 가라앉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형마트는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중년여성이 우리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자리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불문하고 기본시급이 최저임금 수준에 고정된 저임금 일자리이기도 하다.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 모였다.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을 촉구했다. 이들은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에게 손수 엽서를 쓰며 “당당한 엄마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반드시 내년도 최저임금을 인상해 달라”고 호소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 낳을 수 있을까?"



올 여름 결혼을 앞두고 있다는 대형마트 입사 10년차 김효선(37)씨의 사정도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김씨는 마트에 입사하기 전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중소공장에서 7년을 일했다. 하루 12시간 장시간 노동과 공단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지쳤던 그에게 화려하고 깔끔한 대형마트는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왔다.

“입사 당시 하루 6시30분씩 일하고 받은 월급이 80만원이에요. 10년이 지난 지금은 110만원을 받고요. 월 10만원을 더 벌기 위해 4년을 꼬박 야간근무를 했습니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스무 살이었던 김씨는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생업의 길로 들어섰지만 지금까지도 저임금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낳을 수 있을지, 낳더라도 남들처럼 키울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결혼 전에는 커리어우먼의 상징인 은행원이었다가 출산과 육아를 거친 뒤 저임금 시장에 편입된 노동자도 자리를 함께했다. 대형마트 입사 8년차 박지미(45)씨는 결혼하기 전 10년간 제1금융권에서 업계 최고 연봉을 받으며 일했다. 그런데 경력이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38세의 나이에 다시 나온 사회에서 그는 “나이가 많아서 안 된다”, “금융권 경력이 부담스러워 받기 어렵다”는 말을 수없이 들어야 했다.

“저 역시 월 110만원을 받아 아이들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운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못난 엄마를 만나서 아무런 미래도 그리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 억울해요.”



커리어우먼의 무너진 꿈



노동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으로 ‘시급 1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18일 진행되는 최저임금위 제5차 전원회의에 이 같은 요구안을 제출한다.

최저임금위 노동자위원인 김종인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임금노동자 절반 가량이 월 200만원 이하 급여를 받고 있고, 최저임금 수준 또는 그 이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전국 350만명에 달하는 현실”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시장에 몰려 있는 여성과 비정규 노동자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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