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한 임나경(26·가명)씨는 8개월째 구직활동 중이다. 금융권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언감생심이다. 구조조정 얘기가 하루가 멀다하고 신문에 실리는 마당이니 이력서 내기도 무섭다. 3월이 되자 비금융권 기업 4곳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장을 알아보고 있다. 임씨는 "해외 인턴을 하느라 동기들보다 졸업이 1년 넘게 늦어졌다"며 "남들보다 스펙은 괜찮은 편이지만 나이가 많아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취업문 열기도 어렵고, 취업해도 나쁜 일자리=임씨의 걱정은 빈말이 아니다. 고용시장은 그야말로 '풍요 속 빈곤'이다. 주위에 취업자는 많은데 제대로 취업한 사람은 거의 없다. 지난해 9%를 찍은 청년실업은 역대 최고 수준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취업자가 53만3천명으로 늘었는데 주로 50~60대였다. 50~60대 43만9천명이 새로 취업하는 동안 15~29세는 7만7천명 늘었고, 30대는 외려 2만1천명 줄었다.

취직을 해도 일자리 질이 나쁘다. 청년 취업자의 19.5%는 1년 이하 계약직으로 들어갔다. 여성들이 좋은 일자리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해 2월 졸업자들을 대상으로 취업 현황을 조사해 보니 4년제 대학졸업자 취업률은 남성 58.6%, 여성 51.1%로 조사됐다. 한국고용정보원 청년패널조사(2012년)에 따르면 여성 취업자의 52.6%가 상대적으로 처우가 열악한 30인 미만 기업에 취업했다. 지난해 4월 발간된 '청년 노동시장 연구'에서는 비정규직으로 취업한 비율이 여성 18%, 남성 5.2%로 차이를 보인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월평균 임금은 여성이 190만원인 반면 남성은 239만9천원이었다.

◇갈 곳 없는 '경단녀들'=경력이 붙을 만하면 결혼과 출산·육아가 발목을 잡는다. 직장인 김숙진(36·가명)씨는 지난해 10월 첫째를 낳은 지 석 달 만인 올해 1월 부랴부랴 회사에 복귀했다. 팀장을 맡고 있던 터라 자리를 비워 두는 게 여간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출산휴가 90일에 생리휴가·연차까지 붙여 100일을 겨우 넘기고 출근했다. 아이 돌보는 걱정에 사표를 낼까 고민도 했지만 친정 부모님이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온 덕에 한고비는 넘겼다.

김씨는 "팀장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 하는 생각에 육아를 선택하기 어려웠다"며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와 비슷한 고민을 하다 결국 경제활동을 접고 육아전선으로 뛰어든 여성들도 적지 않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들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작성한 '2014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를 보면 25~29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71.8%로 높았다. 2000년 55.9%에 비해 15.9%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30~34세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58.4%로 뚝 떨어졌다. 35~39세는 55.5%로 더 낮았다. 2013년 4월 기준 경력단절여성 195만5천명 중 45.9%가 결혼으로 일을 그만뒀다. 육아(29.2%)나 임신·출산(21.2%), 자녀 교육(3.7%)도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요인이다.

애를 키워 놓고 사회에 복귀하고 싶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다. 정부가 경력단절여성 대책으로 내놓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정책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적은 데다, 저임금·단순업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다 출산 후 일을 그만둔 강소연(44·가명)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난해 초부터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지만 만족할 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강씨는 "아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일을 할 수 있게 시간선택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급여가 너무 적은 것 같아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 또래들은 대형마트 계산원(캐셔)이나 주방일, 그도 아니면 전공을 살려 공부방을 운영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며 "생계가 더 어려워지면 모를까 아직 캐셔 일은 하고 싶지 않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년이 되면 비정규·저임금 일터로=우리나라 40~50대 여성인력 대부분은 대형마트나 청소·간병·학교 급식실 같은 여성집약적 사업장으로 흡수되고 있다. 생계형 하향 재취업의 결과다. 여성집약적 사업장들은 비정규·저임금 구조가 보편화돼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충북지부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장인 권옥자(60)씨는 6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남편이 공사장에서 벌어 오는 돈만으로는 생계를 꾸리기 어려워 요양보호사가 됐다.

권씨는 평균 5~8명의 환자를 돌본다. 기저귀 갈기부터 병실 청소·목욕수발에 재활훈련까지 도맡는다. 허리와 어깨에 파스가 떨어질 날이 없다. 24시간 2교대로 일하지만 하루 15시간30분, 한 달에 13일만 근무로 인정받는다. 손에 쥐는 돈은 160만원에 불과하다.

안정된 일자리도 아니다. 비정규직 고령 여성은 을 중의 을이다. 권씨가 일했던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은 취업규칙상 정년이 60세라며 지난해 12월31일자로 간병인들을 대거 해고했다.

그는 "여성간병인들은 대부분 남편이 없거나 남편이 있어도 외벌이로 생계를 힘들게 꾸려 가는 사람들"이라며 "고령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주고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0세 이상 취업자의 월급여 수준은 전체 평균을 100으로 봤을 때 남성이 86.4였지만 여성은 53.1에 불과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