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세월호에서 숨진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노래를 부르는 노동자가 있다.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달려가 노래로 연대하는 노동자다. 자신이 정리해고로 너무나 힘든 세월을 견뎌 왔기에 슬프고 아픈 이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노동자다. 그런데 그 긴 투쟁의 날들을 꿋꿋하게 견뎌 왔던 동서공업 해고노동자가 지금 너무나 힘들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2008년 동서공업에 민주노조가 출범했다. 민주노조는 현장 조합원의 이해를 담아 파업에 들어갔다. 그러자 회사는 공격적 직장폐쇄를 하고 조합원을 선별 복귀시켰다. 하지만 회사는 직장폐쇄 철회 이후 끝까지 투쟁하던 조합원들을 원래 하던 일이 아니라 현장청소나 도색작업 등을 시키면서 탄압했다. 그리고 2009년 회사는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희망퇴직을 실시한 후 결국 15명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리해고된 15명의 노동자는 모두 2008년 파업투쟁 과정에서 끝까지 버텼던 조합원들이었다. 긴 해고투쟁이 시작됐다.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모두 정리해고가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2013년 대법원은 이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인정해 버렸다.

정리해고를 해야 할 만큼 경영위기가 심각하다는 회사가 국내 최대로펌인 김앤장에 변호를 맡기고,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변호를 맡길 만한 재력이 있었는지도 궁금하지만 더 큰 문제는 대법원 판결 내용이다. 대법원은 “기업의 잉여인력 중 적정한 인원이 몇 명인지는 상당한 합리성이 인정되는 한 경영 판단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할 것”이라고 판결했다. 정말로 기업이 정리해고를 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는지 아닌지를 중요하게 보지 않고, 기업이 생각할 때 인원이 남아도는 것 같으면 기업 마음대로 해고해도 된다고 인정해 준 셈이다.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에게 귀책사유가 없더라도’ 기업 경영상 이유로 대량 해고를 할 수 있게 해 준 제도다.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경영상 피해를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을 때에만 정리해고를 하도록 한 것이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와 상관없이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 주라고 판단한 이 판결이 전례가 돼 버렸다. 2014년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을 판단하면서 이 판결문을 그대로 인용해 정리해고를 정당화했다.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잘못이 없더라도 해고할 수 있는 명분을 얻었다. 정리해고가 쉬워지니 기업들은 정리해고를 가장 쉬운 구조조정 방식으로 채택하게 된다. 2013년 한 해 정리해고와 명예퇴직 등 ‘경영상 필요’에 의해 명예퇴직을 하거나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는 무려 87만명이었다.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하면 관계가 파괴되고, 삶이 무너지고, 때로는 목숨마저 버릴 정도로 삶의 위기에 내몰리는데 기업들은 큰소리친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했다면 그 노동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경영이 나아졌을 때 정리해고자들을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

그러나 정리해고를 저지른 기업들은 대부분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정리해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이들을 갖은 방법으로 탄압한다. 정리해고의 진짜 이유는 경영상 위기가 아니라 노조탄압이나 공장 해외이전 등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억울함을 호소하는 정리해고자들을 짓밟고 탄압하는 데 힘을 쏟는다.

동서공업도 마찬가지다. 경영상 위기였다고 주장하던 동서공업은 현재 매출액 1천300억원대의 강소기업으로 불린다. 기업은 잘나가는데 정리해고 노동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는커녕 억울함을 법에 호소한 노동자 12명에게 법률비용 5천300만원을 물어내라고 통보했다. 국내 최대로펌 변호사들을 고용했으니 소송비용도 비싸다. 동서공업은 정리해고당한 노동자들에게 소송비용까지 물려서 완전히 사지로 내몰고 있다. "정리해고 당해도 죽지 않으려면 침묵하고 순응하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정리해고를 쉽게 용인하는 대법원도 문제지만, 정리해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떠미는 기업의 악랄함도 문제다. 억울하게 내쫓겨 삶이 바닥으로 떨어졌는데, 이제는 사측이 청구한 5천300만원의 법률비용에 떠밀려 간다.

노동자들은 지금 대리운전·우유배달·판매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피와 눈물로 범벅이 된 돈은, 노동자 해고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형로펌 변호사들을 사들인 비용으로 흘러 들어간다. 작은 희망마저도 집어삼키는 기업의 탐욕은 이렇게 잔인하다. 이런 잔인함을 그대로 둬도 좋은가.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을 그들만의 것으로 여겨도 좋은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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