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해고 조합원들이 4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대법원 판결 규탄 기자회견 자리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정기훈 기자
"그동안 많이 늙었죠?"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선 이들이 멋적은 웃음을 보였다. 아기를 품에 안은 이들이 부쩍 많았다. 9년 전 우리 사회에 간접고용 화두를 던진 KTX 여승무원들이 매일 농성과 기자회견을 했던 서울역 앞에 다시 섰다. 세월은 20대 중후반이던 아가씨들을 세찬 풍파에 밀어넣었다. 철도공사(코레일)의 승무업무 위탁을 합법도급으로 본 대법원 판결에도, KTX 여승무원들이 복직 싸움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선언했다.

철도노조(위원장 김영훈)는 4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기업에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는 간접고용을 승인한 대법원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KTX 여승무원들은 "재판에서 졌다고 우리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며 "KTX로 돌아갈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피하고 싶었던 소송, 코레일 약속 위반 탓 7년 낭비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 싸움은 2006년 해고 직후부터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2008년까지 가장 치열했다. 2004년 입사한 이들은 20대 중후반을 오로지 복직투쟁에 매달렸다. 싸움을 시작할 당시 370여명이던 조합원들은 이제 34명으로 줄었다.

코레일과의 법정 공방은 이들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대법원까지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를 소송보다는 노사교섭을 통한 합의가 가장 빠른 복직 수단이라고 봤다. 김승하 KTX열차승무지부장은 "2008년 교섭에서 코레일이 1심 판결만 나와도 그 결과에 따르겠다고 해서 같은해 소송에 들어갔다"며 "그런데 1심 판결에서 우리가 이겼는데도 코레일은 항소를 거듭해 7년 동안 법정 공방만 벌였다"고 말했다.

복직투쟁 9년과 법정 공방 7년이 남긴 상처는 컸다.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코레일과 KTX 여승무원 사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코레일에게 월 180만원을 KTX 여승무원에게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2012년 12월 코레일이 가처분 소송을 통해 임금지급 중단 결정을 받을 때가지 지급됐다. 하지만 대법원 패소로 이들은 4년간 받은 임금 9천여만원을 토해 내야 할 상황에 처했다.

KTX 여승무원이라는 주홍글씨도 내내 이들을 괴롭혔다. 기자회견장에서 만난 정미정 지부 총무국장은 "2008년 소송이 시작된 이후 생계를 위해 취업에 나선 우리는 경력단절과 노조활동 경력자라는 이유로 서류심사·면접에서 낙마를 숱하게 경험했다"며 "여승무원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됐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관계자는 "강성노조 참가자라는 꼬리표와 1여억원에 이르는 빚더미에 짓눌린 이들에게 복직투쟁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며 "대법원과 복직을 끝내 거부하고 있는 코레일에게 분노와 원망이 치밀어 오른다"고 말했다.

"생사여탈권 법원에 맡긴 것 잘못, 이제 싸울 것"

이날 기자회견에는 복직을 법원 판결에 맡겨 뒀던 것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많았다. 김영훈 위원장은 "노동자 생사여탈권을 법원 판단에 맡겨 뒀다는 비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승하 지부장은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는 투쟁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다는 명제를 다시한 번 상기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철도노조는 이날 KTX 여승무원 해고사태 해결을 위한 노사 대화를 코레일에 제안했다. 지부는 대법원 파기환송심을 준비하는 한편 여론화 작업을 위해 국회 앞과 서울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김영선 지부 상황실장은 "대법원 판결로 승무원들은 마치 씹다 버려진 껌이 돼 버린 기분"이라며 "이제 아줌마가 됐으니 눈물은 적게 흘리고 당차게 싸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KTX 여승무원들은 2006년 코레일이 승무업무를 위탁하며 코레일관광레저 정규직 전환을 제안하자 이를 거부했다. 코레일은 같은해 이적을 거부한 KTX 여승무원들을 해고했다. 이후 KTX 여승무원 34명은 2008년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코레일이 자회사에 승무업무를 위탁한 것을 합법도급으로 판단, 지난달 26일 파기환송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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