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220만명을 둔 남아공노총(COSATU, 코사투)이 사실상 분열했다. 이달 초 코사투 중앙집행위원회가 남아공금속노조(NUMSA)를 제명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33표가 제명에 찬성했고 24표가 반대했다.

공식적인 제명 이유는 금속노조가 지난해 말 열린 대의원대회에서 독자적인 노동자정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천명함으로써 '아프리카민족회의(ANC)-공산당-코사투'의 집권 3자동맹을 유지하기로 한 코사투의 정치세력화 방침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또한 1산업-1노조라는 코사투의 조직 원칙을 무시하고 금속노조가 코사투 산하 산별노조들의 조직 대상으로 있는 다른 산업의 사업장들을 조직했다는 것이다.

코사투 산하 20여개의 산별노조 가운데 금속노조를 포함해 8개 노조는 제명 결정에 반대하고 나섰다. 금속노조와 뜻을 같이하면서 코사투 활동 참여 중단을 선언한 노조는 상업식품연합노조·통신노조·식품연합노조·공공연합노조·민주간호협회·축구선수노조 등이다.

지난해 중반 이후 코사투의 분열이 심화하자 새 집행부 구성을 위한 비상대의원대회 개최를 요구해 온 이들 8개 노조는 금속노조 제명을 다룰 단위노조간부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제국주의 식민지를 경험한 제3세계 노동운동은 민족모순이 먼저냐 계급모순이 먼저냐를 둘러싼 논쟁을 피할 수 없었다. 민족모순이 인종모순과 복잡하게 뒤섞인 남아공도 마찬가지였다. 남아공의 예외성은 만델라 정부로 상징되는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변혁전략으로 추진됐던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이 현실에서 달성됐다는 점이다. 남아공운동진영이 민족민주혁명(NDR)으로 이름 붙인 민중민주혁명은 70년대와 80년대에는 무장 항쟁과 폭력 투쟁의 모습을 띠다가, 90년대에는 교섭과 타협의 평화적 모습을 띠었다. 폭력과 교섭의 시기를 두루 거쳐 94년 모든 인종이 참가한 민주선거를 거쳐 등장한 게 ANC-공산당-코사투의 집권 3자 동맹이었다.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짐으로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냉전 구도가 깨지고 자본주의가 세계화되기 시작하던 무렵 성공한 남아공의 민족민주혁명은 다음 단계인 사회주의혁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포섭됐다. 민족해방과 계급평등을 약속한 혁명의 열정은 만델라 정권(94~98년) 때부터 퇴색하기 시작했고, 음베키 정권(99~2008년)과 주마 정권(2009년~현재)을 거치면서 부패·빈곤·실업·불평등이라는 절망감을 남아공 노동자와 민중에게 안겨 줬다.

정부의 노동유동화(labor flexibility) 정책에 맞서 파견노동을 철폐하고 인력브로커를 근절하라는 코사투의 요구는 무시됐다. 고속도로 통행료를 받겠다는 사실상의 민영화 정책을 정부가 내놓자 노동자와 서민의 불만이 끓어올랐다. 집권 ANC와의 관계를 재정립하자는 목소리가 커졌고, 공산당이 노동계급의 정당으로 ANC를 왼쪽으로 끌어당기기는커녕 ‘2중대’ 역할에 만족한다는 비난이 잇따랐다. 정부 비판에 코사투 사무총장 바비가 앞장섰고, 최대 조직인 금속노조(NUMSA)가 뒤를 받쳤다. 반면 코사투 위원장인 시두모 들라미니와 광산노조(NUM)·교육보건연합노조(NEHAWU) 등은 동맹을 유지해야 한다는 흐름을 고수했다.

집권 3자 동맹을 이어 갈 것인가, 아니면 깰 것인가를 둘러싼 전략과 입장의 차이로 생겨난 코사투의 분열은 올해 초 ANC 지도부의 개입으로 멈추는 듯했다. 하지만 봉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코사투 사무총장은 금속노조를 제명한다는 중앙집행위원회의 결정을 통지하는 공문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사무총장의 행위를 두고 코사투 위원장이 비난하고 나서는 등 일국 노총(national center)으로서 가져야 할 권위와 신뢰가 심각하게 훼손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초 여직원과 코사투 사무실에서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폭로돼 정치적 위기에 처했던 사무총장 바비는 중앙집행위 결정을 통해 직권남용과 규율위반으로 직무정지까지 당했으나, 직무정지 결정에 하자가 있다는 법원의 판결로 사무총장 직무에 복귀한 바 있다.

코사투 분열의 최대 피해자는 85년 출범 이후 남아공을 넘어 제3세계 노동운동을 주도해 왔던 코사투 자신이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제명된 금속노조를 따르는 7개 산별노조들이 코사투를 탈퇴해 새 노총을 꾸린다면, 새 노총은 민간부문의 제조업 노동조합들이 주도하고 코사투는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주도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은 두 번째 피해자로 2016년 지방선거에서 어려움이 예상되는 집권 ANC를 꼽는다. ANC에 대항하는 좌파정당이 노동조합운동을 기반으로 등장할 경우 선거 결과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조합원 35만명의 금속노조(NUMSA)를 제명한 코사투가 신생 조직인 금속연합노조(MAWUSA)를 금속산업을 대표하는 산별노조로 인정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코사투의 분열과 바닥을 향한 질주에서 허우적대는 남아공 노동운동의 위기가 한국에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industrially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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