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지난 8일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학내에서 농성을 진행하고 있던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에게 법원 집행관이 폭력적으로 퇴거를 요구하다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일이 벌어졌다. 원청인 울산과학대가 쟁의행위 중인 청소노동자들의 퇴거와 손해배상·가압류를 법원에 신청해 벌어진 일이다.

십수 년간 울산과학대에서 일해도 최저임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용역노동자들이 용역업체에 임금인상을 요구하면 용역업체는 자신들은 결정권이 없다는 답만 되풀이한다. 원청은 자신은 사용자가 아니라며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법원이나 공권력의 힘을 빌려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력화시킨다. 이는 울산과학대만이 아니라 90년대 말 이후 간접고용 노동자 노조들이 반복해 경험해 왔던 일이다.

심지어 2003년에는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원청과 단체협약을 맺은 지역건설노조 간부들에 대해 검찰이 공갈·협박죄로 기소하기까지 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단체교섭의 당사자로서의 사용자는 근로계약관계의 사용자에 한정되지 않고, 비록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에 대해 영향력 내지 지배력을 미치는 자도 해당된다”고 밝힌 바 있다(대구고법 2006노595).

헌법상 노동기본권이기도 한 단체교섭 요구를 공갈·협박으로 단죄하려던 이 시대착오적인 시도는 국제노동기구(ILO)에도 제소됐다. ILO는 2007년부터 지속적으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해 왔다. 나아가 ILO는 건설노조 외에 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기륭전자분회 등 간접고용 노조와 관련된 사건에서 노동기본권을 회피할 목적으로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에 관해 단체교섭이 촉진될 수 있도록 정부가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또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상대로 노동 3권을 행사한 것을 이유로 해고된 경우, 이들이 겪은 모든 고통에 대한 보상과 차후 이러한 부당노동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라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

지금 씨앤앰·티브로드 등 케이블방송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두 달 가까이 파업과 농성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투쟁이 이렇게 장기화되는 주된 이유는 이들의 노동조건에 대한 지배력·영향력을 갖고 있는 원청이 교섭에 일체 응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협력업체 폐업·대체인력 투입·계약해지 등 노동자들의 요구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로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인천공항공사·삼성전자서비스·케이블방송·이마트 등 산업과 지역을 가리지 않고 종양처럼 퍼져 있는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추는 이들에게 지배력·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업주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라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정부는 최소한 그동안 법원의 판례와 국제노동기준을 존중해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노조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 국회는 더 이상 책임을 방기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시계는 여전히 노동기본권 행사를 형법으로 단죄하던 19세기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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