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천안점에서 근무 중 쓰러져 지난달 28일 사망한 송영주(52·가명)씨의 이야기는 장례 절차를 함께 진행한 첫째 딸 김수정(가명)씨의 지인인 강태중(가명)씨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했습니다.

<매일노동뉴스>는 유가족인 김씨와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김씨는 어머니 사망으로 인한 충격으로 인터뷰를 거절했다는 사실을 미리 밝힙니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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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도 받지 못한 채 숨졌다. 송영주씨는 지난달 18일부터 이마트 천안점 시식코너에서 풀무원 라면을 끓였다. 키보다 높은 진열대 앞에서 라면을 끓여 종이컵에 담았다. 넉넉지 못한 형편에 시작한 일이었다. 송씨는 같은 점포 화장품 매장에서 근무하는 막내딸 김수진(가명)씨와 함께 전셋집으로 옮길 소박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일급 6만5천원.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52세의 송씨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가슴 답답해 조퇴 신청했지만 거절당해

지난달 25일은 여느 때 아침과 달랐다. 그날따라 속이 홧홧하고 답답했다. 대형마트에 손님이 몰리는 금요일인 터라 조퇴를 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력업체 관리자와 이마트 매장PM(관리자급)의 동의 없이 조퇴하면 판매수수료의 50%인 3만2천500원을 차감하는 규정도 있었다.

참다 못한 송씨는 손해를 감수할 요량으로 조퇴를 신청했다. 예상대로 인력업체 관리자와 매장PM은 거부했다. 송씨는 답답한 나머지 오후 2시께 휴게실 의자에 누웠다. 막내딸 김씨가 휴게실에서 그의 몸을 주물렀다. 속이 답답하다는 어머니의 말에 막내딸은 소화제를 사러 나갔다. 김씨가 자리를 비운 20분 사이 쓰러진 송씨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송씨는 천안충무병원으로 옮겨진 지 3일 만에 숨졌다.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두 딸은 어머니로부터 지병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허망하게 어머니를 잃은 두 딸에게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마트·풀무원과 인력업체 유앤아이머천다이징 관계자들이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송씨에 대해 "우리 회사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송씨는 인력업체로부터 판매수수료(임금) 명목으로 일급 6만5천원을 받았다.

유가족과 인력업체측은 송씨의 조퇴 신청을 두고 사실관계를 다퉜다. 송씨가 작성한 위탁계약서에는 조퇴·지각시 보고 대상자는 이마트 매장PM과 인력업체 담당매니저였다. 유가족은 “어머니가 조퇴 신청을 했다”고 했고, 인력업체측은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맞섰다. 막내딸이 산업재해 얘기를 꺼내자 회사 관계자로부터 “무슨 산재냐”는 말이 돌아왔다.

유가족은 발인을 연기했다. 가까스로 인력업체와 합의서를 작성하고 장례를 치렀지만 두 딸의 가슴에는 깊은 생채기가 났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첫째 딸인 김수정씨의 옆을 지킨 지인 강태중씨는 “수정이가 가진 게 없고 무지한 사람은 당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다”며 “사람이 죽었는데 우리 회사 사람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당하다 보니 괴로워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강씨는 “(수정이가) 어머니를 편하게 보내 드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전했다.

일당 6만5천원 판촉노동자, 지위는 '사장님'

하루 8시간 판촉활동을 하면 다음달 10일 판매수수료 명목의 임금을 받는다. 송씨가 인력업체와 체결한 위탁계약서에는 “판촉활동 기간 중 자신의 책임하에 자유롭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판매활동 또는 그 실적이 극히 부진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이 명시돼 있다. 회사측이 형식상 개인사업자로 분류하는 탓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기 힘들다.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를 금지하고 있는 근기법의 사각지대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마트는 이러한 판촉노동자들을 협력업체와 인력업체에서 공급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판촉노동자들은 송씨처럼 근무 중 쓰러져 사망하거나 다치더라도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예컨대 이들은 이마트에서 풀무원 라면 판촉활동을 하고 인력업체로부터 고정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마트·풀무원·인력업체 누구도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마트에서 판촉활동과 상품진열을 하는 판촉사원과 이마트에 직접고용된 직영사원은 어떻게 다를까. 사실 협력업체 판촉사원과 이마트 상품진열 담당 직영사원의 업무는 크게 다르지 않다. 판촉사원들은 소속된 업체의 상품 판촉활동을 하는 것 외에도 △PB상품(유통업체가 제조업체에 위탁해 만든 상품) 판촉활동 △타사 상품진열 및 정리 △유통기한 검사 △창고정리 업무를 한다.

이마트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판촉사원 박경자(가명)씨는 “원칙대로 하면 소속업체 상품만 담당하면 되지만 네 거 내 거 따질 것 없이 담당코너의 상품을 다 정리하고 판매해야 한다”며 “이마트 일을 그렇게 하는데도 협력업체 사원들은 상품 구매시 할인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숨진 송씨의 사례에서 유가족과 인력업체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한 부분은 조퇴 보고였다. 이에 대해 박씨는 “매장PM과 업체측 모두에게 보고한다”며“부득이하게 조퇴할 경우 매장PM에게 보고하고, 부족한 근무시간만큼 다른 날에 보충한다”고 증언했다.

대형마트가 이 같은 방식으로 판촉사원을 운영하는 이유는 인건비 절감과 고용관계에 따른 법적 책임 때문이다.

“판촉사원 운영은 약탈적 방식의 신종 불법파견”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7월 ‘대규모유통업 분야에서 납품업자 등의 종업원 파견 및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현행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대형마트 등 대형유통업체가 납품업자로부터 종업원 등을 파견받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는 가이드라인에서 △대형마트가 판촉사원의 인건비를 부담하는 경우 △납품업체가 판촉사원 파견에 따른 예상이익을 객관적·구체적으로 작성해 대형마트에 파견을 요청하는 경우 △대형마트가 협력업체로부터 특수한 판매기법을 지닌 숙련된 판촉사원을 파견받는 경우 외에는 판촉사원 파견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마트 공동대책위원회가 지난해 작성한 ‘신세계 이마트의 인력운영 체계에 대한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공대위는 협력업체 판촉사원에 대해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약탈적 방식의 신종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동인천점은 전체 146개 이마트 점포 가운데 평균 수준의 인력을 운영하는 곳이다. 동인천점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은 152명이다. 이마트 전체로 따지면 2만2천여명의 협력업체 직원이 근무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력업체들은 유앤아이머천다이징과 같은 방식으로 대형마트에 판촉사원을 보낸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특수고용직 신분으로 근무하는 판촉사원들은 독립된 자산·생산도구·영업망 없이 오로지 노동력만 제공하고 있어 노동자와 다를 것이 없다”며 “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해 불법파견 조사대상도 안 되는 기형적인 고용형태”라고 지적했다.

유 노무사는 “위탁계약서를 쓴 사업자라는 이유로 이 같은 고용형태가 인정된다면 노동법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마트 관계자는 “협력업체에서 자발적으로 보내는 판촉사원의 고용형태에 대해 이마트는 관여할 수 없다”며 “이마트는 판촉사원에 대한 업무지시를 하지 않고 있고 권한도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이어 “송씨의 경우처럼 판촉사원이 사망하거나 다치면 이마트가 도의적인 차원에서 최대한 돕겠지만 고용관계를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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