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철도 민영화 논란에 이어 최근 의료 민영화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정부는 의료 민영화가 아니라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영리를 추구하면서도 철도 민영화는 아니라는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는 '의료 민영화 반대 100만 서명운동'에 나서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는 정부가 영리추구 위주의 의료 민영화 정책을 철회하지 않으면 6월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한다는 방침이다.

<매일노동뉴스>와 보건의료노조는 공동기획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연속기고를 마련했다.<편집자>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모든 나라의 의료제도는 의료 수요자인 국민(제1자), 의료 공급자인 의료기관(제2자), 그리고 양자를 조정하고 규제하는 정부(제3자)로 구성돼 있다. 근대 이전의 시대로 올라가 보면, 의료제도는 의료 수요자인 국민(제1자)과 의료 공급자인 의료기관(제2자)으로만 구성돼 있었다. 이들이 알아서 의료서비스를 사고팔았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이것이 불가능하게 됐다. 의료기술 발전과 의료기관 첨단화가 진행되면서 의료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사회계층 간 빈부격차가 심화하면서 극소수 부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필요한 의료이용의 보장을 장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중산층을 포함한 서민들은 갑작스러운 질병 상황에 직면했을 때 발생하는 막대한 의료비를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를 위한 경제적 준비가 필요하다. 이 일은 개인이나 시장이 하는 것보다는 국가가 담당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후 지금까지 유럽 복지국가를 중심으로 국가의료보장제도가 발전해 왔다.

국가의료보장제도에서 국가는 정부재정을 투입해 직접 의료기관을 설립하기도 하고, 민간의료기관으로부터 의료서비스를 집합적으로 구매해 필요한 국민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국가의 위상과 역할을 ‘제3자’라고 부른다.

결국 제3자의 제도적 등장으로 인해 의료 수요자인 국민은 과거에 비해 의료이용의 효율성과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큰 혜택을 누리게 됐다. 그렇지만 의료 공급자인 의료기관은 과거에는 없던 제3자로부터의 간섭과 통제를 받게 됐다. 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겠지만, 의료공급자들과 총자본의 입장에서는 큰 걸림돌이 하나 생긴 것이다. 제2자인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제3자의 간섭과 규제만 없으면 제1자인 국민에게 소신껏 진료를 하고 자유시장 원리에 따라 마음대로 진료비를 받을 수 있으므로 크게 유리할 것이고, 금융자본을 위시한 총자본은 큰돈을 벌 기회를 잡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은 언제나 약자의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정부가 국민의 편을 들어 적절한 법률과 관련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의료기관들을 다방면으로 규제 또는 통제하게 된다.

그래서 의료계는 정부의 의료개입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그렇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낮은 건강보험료 수준에서 국민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다 보니 정부가 진료수가를 심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늘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비난했고, 이에 맞서 시민사회는 국민건강보험을 옹호하며 맞서 왔다. 양자 간 앙금은 매우 깊다.

우리는 대한민국 의료제도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의료공급체계를 살펴보면 병원급 의료기관의 93%를 민간이 담당하고 있다. 유럽 복지국가의 50~95%에 비하면 크게 비정상이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의료재정체계를 들여다보면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63%에 불과하다. 유럽 국가들이 85%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비정상이다. 병·의원들이 원가의 80%에도 못 미치는 낮은 의료수가로 인한 손해를 비급여진료와 과잉진료로 보충하는 현실도 비정상이다. 일차의료가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비정상이다.

대한민국 의료체계의 이런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방향으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미국식의 실패한 시장주의 의료체계가 아니라 유럽식의 복지국가 지향의 의료체계라는 확신이 우리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지금도 부실하고 비정상적인 요소가 많은 대한민국의 의료체계를 더욱 더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보건의료 분야의 규제를 철폐·완화해 ‘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처’로 삼겠다는 의료시장주의 노선, 즉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가 그것이다.

정부는 재진 및 만성질환자에 대한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이것은 의사와 환자 간의 대면진료를 화상진료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러면 삼성과 IT업계는 큰돈을 벌겠지만 일차의료는 무너진다.

심지어 정부는 비영리법인 병원에 영리자회사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비영리 의료법인들도 여행·온천·화장품·건강식품 등 다양한 업종에서 투자를 받아 영리를 추구하는 주식회사 형태로 자회사를 세우고, 마음껏 이익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라고 부른다. 반드시 저지해야 한다. 이것이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적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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