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우리나라 보건의료제도는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제도개선 투쟁을 벌이고 있는데요. 박근혜 정부는 이를 가만히 두는 것도 모자라 아예 거꾸로 가려고 하네요.”

유지현(46·사진)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이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열린 ‘우리나라 의료제도 현실과 의료 민영화 정책의 문제점’ 사내특강에서 “공공의료기관의 비중이 낮고 건강보험이 무너져 세 모녀 자살사건과 같은 비극이 생기는 것”이라며 “박근혜 정부가 이를 바로잡기는커녕 삼성 등 재벌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 의료 민영화 정책을 몰아붙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의료 민영화 저지를 위해 6월 총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보다도 낮은 공공성, 흔들리는 건강보험

유 위원장은 우리나라 의료제도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공공의료기관 비중을 제시했다. 그는 “1949년 우리나라 공공병원 비중은 80%대였지만 2011년 10.4%로 떨어졌다”며 “의료 민영화의 나라라는 미국(25.8%)보다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5%에 훨씬 못 미치는 세계 꼴찌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건강보험 보장성도 하락하고 있다. 2010년 기준 62.7%에 머물러 있다. 노무현 정부 때 64%대까지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민간보험이 성행하고 있다. 2009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8%가 민간보험에 가입해 있다. 인구로는 3천만명 이상이다. 시장규모도 민간보험이 2011년 17조원을 넘어 건강보험 전체 재정의 53%를 차지했다.

유 위원장은 “현재와 같이 건강보험의 역할이 줄고 민영보험이 활성화되면 결국 훗날 '건강보험과 민영보험 중 선택하게 해 달라'는 얘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 공공성의 마지노선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가 폐지되고, 의료비 폭등으로 '맹장수술 2천만원' 식의 괴담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경고다.

재벌엔 의료시장 내주고, 병원엔 돈벌이 허용

상당수 국민은 “우리나라 병원 10개 중 9개가 민간병원인데 왜 의료 민영화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유 위원장은 “운영은 민간이 하더라도 현재 법적으로 의료기관은 영리사업을 할 수 없다”며 “박근혜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해 의료기관에 법적으로 돈벌이를 허용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 제4차 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발표한 의료법인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서울대병원 등 학교법인에 허용하고 있는 영리자회사 설립을 의료법인으로 확대하는 것일 뿐"이라며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유 위원장은 “정부안에는 현재 8개의 부대사업 허용범위를 의료연관사업으로 광범위하게 넓히는 방식이 포함돼 있다”며 “병원이 외부자본을 통해 영리자회사를 설립하면 환자들을 상대로 본격적인 돈벌이가 시작돼 의료비가 폭등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원격의료 허용에 대해서는 낮은 실효성과 함께 추진배경에 의문을 제기했다. 유 위원장은 “도서·벽지 환자들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잘못 작동된 기계가 사람 목숨을 앗아 가더라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의료사고가 예상된다”며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역차별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유 위원장은 이와 함께 “보건복지부의 계산대로라면 8조원에서 12조원의 원격의료기기 시장이 열린다”며 “U헬스 사업을 꾸준히 준비해 온 삼성에게 차세대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노조와 더불어 정부의 보건의료 정책에 반대하는 투쟁을 펼쳤던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7일 정부와 시범사업을 전제로 원격의료 도입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 유 위원장은 “광범위한 연대단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 직능단체와 협의체를 꾸렸는데 이제는 선을 그을 때가 온 것 같다”며 “시민·사회단체와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 가는 더 큰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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