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다. 100명의 노사정 전문가 중 37명이 선택했다. <매일노동뉴스>가 매년 실시하는 설문조사에서 현직 대통령이 1위를 한 것은 처음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0년 2위에 오른 것이 역대 최고였다.

대통령이 우리나라의 최고통치권자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국내 노사관계·노동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3년부터 매일노동뉴스가 10년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추미애 민주당 의원(2009년)을 빼고는 올해의 인물에 선정된 이들은 전부 노동계 인사들이었다. 이례적인 것은 분명하다. 올해의 인물 조사와 함께 진행된 10대 노동뉴스 선정 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현직 대통령 '불통'으로 첫 1위 … 철도파업·통상임금 논란 촉발

주요 노동이슈 1·2위를 차지한 철도노조 파업과 통상임금 문제를 보자. 철도노조 파업의 원인을 제공한 수서발 KTX 주식회사(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설립은 박 대통령의 공약파기 논란을 낳았다. 박 대통령은 특히 철도노조 파업에 대해 “명분 없는 파업”이라고 밝혀 검찰과 경찰의 강경대응을 부추겼다.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이 난입한 다음날인 이달 23일에는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가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불통’이 뭔지 제대로 보여 준 셈이다. 천주교 신부들이 ‘정권 퇴진’을 언급할 때도 대응을 자제했던 민주노총은 정권 퇴진투쟁에 나섰다.

통상임금 논쟁도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이 불을 지폈다. 지난해 3월 금아리무진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로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은 대세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5월 대니얼 애커슨 지엠 회장을 만나 “통상임금은 한국경제의 큰 문제다. 꼭 해결하겠다”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으로 통상임금 논쟁이 본격화했다. 통상임금 때문에 기업이 망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고, 노사합의로 정기상여금을 제외하면 인정할 수 없다”면서도 ‘회사가 어려우면 과거의 일은 묻지 말라’는 식의 희한한 결론을 내렸다.

이 밖에도 전교조·공무원노조의 조합원 자격문제, 정부가 올인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실효성 논란, 기초연금 축소와 같은 공약파기 논란 등 올해 10대 노동뉴스에 선정된 이슈들은 박 대통령의 의중·발언이 반영된 것들이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철도파업과 전교조 문제 등 박 대통령이 역대 정권과는 달리 초창기부터 노동현안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초강수를 두면서 노동문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 됐다”고 분석했다.

불통정치 피해자 김명환·신승철·김정훈

올해의 인물 열 손가락 안에 든 인사들은 박 대통령 노동정책의 피해자가 되거나 정권과 각을 세운 사람들이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박 대통령보다 3표 적은 34표로 2위를 차지했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24표)이 3위로 뒤를 이었다.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과 최장기 철도노조 파업, 사상 초유의 민주노총 경찰난입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들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 누구도 쉽게 예상 못했던 최장기 파업(29일 현재 21일째)을 이끌고 있다. 민주노총 건물에서 신출귀몰하게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면서 일약 ‘스타’가 됐다. 2013년 마지막을 향하는 지금,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의 눈과 귀는 김 위원장과 철도노조를 향하고 있다.

올해 7월 민주노총 지도부 공백 8개월 만에 위원장에 당선된 신승철 위원장은 취임 직후 공무원노조 설립신고 반려와 전교조 '노조 아님' 통보, 철도노조 파업 등 심각한 현안에 직면했다. 민주노총 합법화 14년 만에 경찰력 난입을 지켜본 위원장이 됐다. 역설적으로 이 사태를 계기로 민주노총 위상이 제고되고 대정부 투쟁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신 위원장의 주가도 올랐다.

장기간 지도부 공백으로 흐트러져 있던 민주노총 조직을 추스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들은 신 위원장이 민주노총 설립신고증을 찢어 버렸던 11월10일 전국노동자대회에 조합원 3만명 이상이 참가하자 “민주노총의 분위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 같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7위를 차지한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14표) 역시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갖은 고초를 겪은 인물 중 한 명이다. 10월24일 고용노동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다가 서울행정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기사회생했다. 하지만 곧바로 지난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검찰은 전교조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김 위원장은 이달 22일 민주노총에 진입하려는 경찰과 몸싸움을 하면서 연행된 139명 중 유일한 구속영장 신청 대상자가 됐다.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들도 주목받아

올해의 인물 순위에서 눈에 띄는 인사들은 통상임금 판결을 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들이다. 양승태 대법원장을 직접 지목한 이를 포함해 8명이 올해의 인물로 대법관들을 선택했다.

이달 18일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는 대원칙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에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가 합의해 놓고도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어긋난다는 판시를 덧붙여 노사정을 놀라게 했다. 재직을 전제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대법관들의 결정에 따라 노동계와 경영계는 내년에 다시 한 번 통상임금 전쟁을 벌이게 됐다.

죽음으로 저항한 고 최종범

10월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고 최종범씨(22표)가 4위에 올랐다. 올해만큼 삼성이 노사정 안팎의 화두가 된 적이 없었다는 방증이다. 고인은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에 삼성전자서비스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노조탄압의 고통을 호소하면서 세상을 등졌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다”며 “전태일처럼 그러진 못해도 부디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유서를 남겼다. 차가운 냉동고에 있다가 55일 만인 이달 24일 숨지기 직전 언급했던 전태일 열사의 곁에 묻혔다. 한 노동계 인사는 최씨의 장례식에 앞서 “지난해 말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와 현대중공업 이운남 열사가 세상을 떠난 이후 열사 정국이 1년 동안 계속된 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내려온 최병승, 갇힌 김정우 … 2년 연속 올해의 인물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지난해 10월17일 철탑에 올라 같은해 말 주목받은 인물 1위에 뽑혔던 최병승씨는 올해도 6위(21표)에 선정돼 10위권 안에 들었다. 함께 농성한 천의봉씨(4표)는 13위를 차지했다.

철탑농성 296일 만인 8월8일에 땅에 내려온 최씨는 현대차 정규직 신분이 됐지만 공장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현대차 사측이 1월9일 인사발령 뒤 무단결근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는 최씨 문제를 놓고 5개월째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11월 최씨가 해고된 기간 동안 받지 못한 임금 8억4천만원을 현대차가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도 지난해(5위)에 이어 올해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8명의 전문가들이 김 전 지부장을 선택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대법관들과 함께 9위에 선정됐다.

6월 대한문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하고 화단을 조성하는 서울 중구청 관계자들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구속된 그는 이달 2일 특수공무집행방해·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올해도 활약한 은수미, 체면 구긴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이 된 방하남 장관(22표)은 고 최종범씨와 함께 4위에 선정됐다. 취임 초기 “강성노조 때문에 진주의료원이 어려워졌다”는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발언을 비판하는 등 학자 출신 장관으로 소신발언을 하면서 긍정적인 평가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노정합의가 이뤄졌는데도 공무원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하고, 전교조에 노조 아님 통보를 강행한 뒤 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결정을 받으면서 비판과 망신을 자초했다. 최근에는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해 중재능력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주가가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다.

지난해 주목받은 인물 7위였던 은수미 민주당 의원(9표)은 한 계단 내려간 8위를 했다. 그래도 정치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10위권에 진입하는 저력을 보였다. 삼성전자서비스·마사회·집배원·쌍용차 등 굵직한 노동현안에서 변함없는 개입력을 보여 줬다.

김대환 11위, 문진국·이희범 공동 13위

장관 출신으로서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대환 위원장(7표)은 11위에 올랐다. 임금체계 개편과 근로시간단축 등 주요 노동현안에서 대화를 주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진주의료원 폐업 논란의 중심에 섰던 홍준표 경남도지사(5표)는 12위에 올랐다. 문진국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희범 경총 회장은 4표를 받아 공동 13위를 차지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공동 13위로 뽑혔다.

장기파업 중인 철도노조와 각을 세우고 있는 최연혜 코레일 사장(3표)은 18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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