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터기 생산업체 콜센터에서 일하는 A씨는 “출장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낼 때마다 고객들로부터 심한 불평을 듣는다. A씨는 “물건을 잘못 만들어 놓고 왜 돈을 요구하냐는 식의 전화를 수십 통 받는다”며 “스트레스가 심해 직원들이 세 달을 못 버티고 나간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바(Bar)에서 일하는 B씨는 얼마 전 손님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 술에 취한 손님에게 정중하게 술값 계산을 요구했는데, 손님은 술값이 잘못됐다며 계산 대신 폭언을 했다. B씨는 “아무리 술집에서 일한다지만 너무한다”며 “스트레스가 심해 매일 집에 가면 동생한테 화를 낸다”고 토로했다.

백화점 판매노동자·콜센터 노동자 등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 중 30% 이상이 자살충동을 느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평균보다 두 배 이상 높아 감정노동자 노동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명숙 민주당 의원과 감정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13일 민간·공공서비스산업 종사자 건강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는 백화점·콜센터·카지노 등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2천259명을 설문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조사 결과 감정노동자 중 90% 이상이 고객으로부터 폭언·인격무시·성희롱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행을 당했다고 응답한 노동자가 10%를 넘었다. 응답자 중 20% 이상은 고객으로부터 당한 부당한 대우를 회사에 알렸지만 “무조건 고객에게 사과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답했다. 2차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한명숙 의원은 “노동자에게 강압적으로 친절을 요구하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며 “고객으로부터 발생하는 위협에 대해 관리자가 적극 방어하고 노동자는 회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정노동자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마음의숲 박성희 상담실장은 “건강정기검진을 받는 것처럼 심리상담도 정기적으로 받아야 한다”며 “노사가 합의해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어 회사 업무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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