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120다산콜센터 위탁업체에서 상담사로 5년째 일하는 박미성(35·가명)씨는 최근 겪은 악성민원을 잊을 수가 없다.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여자친구가 계단에서 굴러 다쳤는데 영화관측에서 사과와 보상을 거부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박씨는 서울시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라고 양해를 구했지만 시민은 “내가 서울시민이니 다산콜센터에서 처리해 줘야 한다”고 우겼다. 급기야 민원인은 박씨의 팀장과 통화했고, 팀장은 박씨에게 문제해결을 지시했다. 박씨는 결국 부산의 영화관측에 전화해 민원인의 연락처와 항의내용을 전달해야 했다.

박씨는 “그날은 모든 상담전화가 무서웠다”며 “악성민원인데도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일을 만든 팀장이 왜 있는지, 서울시는 이런 업체의 행태를 알기나 하는지 아직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다산콜센터에서 일하는 상담사들의 감정노동 강도와 후유증이 다른 감정노동자들이 비해 훨씬 높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고객으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한 회사지원은 부족했다.

한명숙 민주당 의원과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단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공동주최한 콜센터 노동자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임상혁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감정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백화점 판매노동자 △카지노딜러 △철도·지하철 역무원 △열차객실 승무원 △간호(조무)사 △콜센터 노동자 등 2천205명을 상대로 지난달 실시됐다. 조사에 응한 콜센터 노동자 303명 중 95%는 다산콜센터 상담사들이다.

실태조사 결과 콜센터 상담사들이 고객의 무리한 요구를 경험한 비율은 87.2%로, 다른 감정노동자 평균(79.8%)보다 높았다. 인격무시(94.3%)나 욕설·폭언(91.4%)을 경험한 비율도 각각 94.3%와 91.4%로 다른 감정노동자들(86.7%·79.7%)보다 많았다.

병원상담이 필요한 중증도 이상의 우울증을 보이는 비율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42.3%로 카지노딜러(59.7%)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자살충동 경험 비율 역시 콜센터 노동자(33.8%)들이 카지노딜러(44.7%)의 뒤를 이었다. 임상혁 소장은 “돈을 잃어 극도로 흥분된 고객을 대면하는 카지노딜러를 제외하면 콜센터 노동자들의 정신적 고통이 크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콜센터 노동자들의 피해나 감정노동에 대한 회사의 지원은 미흡했다. 고객으로부터 당한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렸을 경우 회사 가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은 경우는 3.6%에 그쳤다. 반면 그냥 참으라거나 고객에게 무조건 사과하라는 사례는 53.5%나 됐다. 오히려 피해노동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준 업체(3.3%)도 있었다.

임 소장은 “업체가 콜센터 노동자들이 '진상고객'을 상대했을 때 전화를 끊거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업무매뉴얼이 필요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고객으로부터의 피해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명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다산콜센터 민간위탁업체들은 이윤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피해 노동자들에게 사과나 친절을 강요할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들을 서울시나 출연기관이 직접고용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시 민간위탁 비정규직 대책 다음달 나올 듯
다산콜센터 고용개선 대책 주목


서울시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비정규직 대책에서 제외한 다산콜센터를 포함한 민간위탁업무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에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시는 올해 하반기에 연구용역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용역에서는 다산콜센터와 청소년수련원 등 343건의 민간위탁사업과 노동자 1만3천여명에 대한 근무조건 개선·기능 재조정·직접고용 적합성을 다루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달 안에 연구를 마무리하고 다음달에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차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을 통해 직접·간접고용 비정규직 7천600여명을 무기계약직화 또는 직접고용한 서울시가 다산콜센터 업무의 직접고용을 추진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300여개에 이르는 다산콜센터 상담업무 가운데 일부를 축소하는 등 기능 재조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22일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 고용성격과 감정노동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다산콜센터 상담사 고용개선과 관련한 방안을 제시했다. 서울시가 무기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하거나, 기간제로 먼저 고용한 뒤 나중에 무기계약직화하는 방법이다.

처우개선과 관련해서는 서울시의 무기계약직 수준을 적용하거나, 서울시설관리공단의 처우를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별도의 공단이나 공사를 만들어 상담사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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