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잠 든 사이, 아이들 날적이를 기록하느라 바쁘다. 쉴 틈이 없다.자료사진=정기훈 기자

“보육교사 일은 늪과 같아요. 연차가 쌓여도 이직을 하면 인정받지 못 하고 1호봉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죠.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어도 아이들이랑 지내다보면 정이 들어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아요.”

수원에서 8년째 보육교사를 하고 있는 최아무개씨의 말이다. 최씨는 2009년 무상보육이 시행된 이후 어린이집에 아이들이 너무 많이 늘어 고민이다. 늘어난 수요에 맞춰 정부는 매년 예산을 증액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가 지난 8월 발간한 ‘보육·육아교육 지원에 관한 9가지 사실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의 보육 예산은 2008년 1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4조1천400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했다. 그 결과 0~2세의 어린이집 이용률은 2008년 36%에서 지난해 63%로 2배 가량 늘었다.

반면 보건복지부의 ‘2012년 국공립 보육교사 인건비 지급기준’에 따르면 2011년 대비 동결 수준이며 2010년 대비 3% 인상된 수준이다. 가정의 경제부담을 덜어주는 무상보육은 실현됐지만 정작 아이들을 돌보는 보육교사 처우개선으로는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최씨는 “정부에서 종일제 보육료를 지원해 주니까 부모들은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며 “아이들이 늘어난 만큼 보육교사들의 노동강도가 크게 늘었다”고 하소연했다.

하루 근무시간 9시간 넘는데 수당·휴식도 없어

지난 6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한 ‘보육교사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일 8시간 근무가 원칙이지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호자의 퇴근 시간이 늦어져 아이를 늦게 데려가거나 수업준비와 행사준비 등으로 보육교사들의 평균 근무시간은 9시간이 훌쩍 넘는다. 보육 교사들은 이를 ‘고무줄 근무시간’이라고 부른다.

국고 지원을 받으려면 어린이집 평가인증이 필수인데 이를 위한 평가·준비기간 4개월 동안 보육교사들은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기 일쑤다. 또한 보육교사의 직무는 씻기기·배변 처리하기·식단 짜기 등 보육관련 업무부터 사무·시설 관련 업무까지 약 146가지나 된다. 수많은 업무를 근무시간 내 처리해야 하지만 보육일지 작성과 같은 서류 업무는 퇴근 후나 주말에 한다.

보육교사는 업무 특성상 한시도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 없다. 근무시간으로 포함되지 않은 점심시간조차 아이들 식사 지도를 하기 때문에 보육교사들은 10분 내외로 식사를 마쳐야 한다. 휴게실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고, 휴게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보육교사들은 휴게시간도 없이 종일 노동을 하는 셈이다

강원도 원주시의 18년차 보육교사인 김령경씨는 “식사 지도를 끝내고 밥을 빨리 먹다 보니 소화불량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며 “카레밥이 나오는 날은 마시는시피 먹는다”고 말했다.

지난 8월 인권위가 1천643명의 보육교사들을 설문조사한 결과 60.7%은 “점심시간도 휴게시간도 없다”고 답했다. 반면 각종 수당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응답자가 70%를 상회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국공립 보육교사 인건비 지급기준’에 명시된 보육교사 임금은 1호봉 139만원부터 5호봉이 156만원 사이다. 그런데 민간 어린이집은 이보다 낮다.

심선혜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의장은 “영유아보육법이 12시간 보육을 기본으로 할 것이라고 명시해 놓았기 때문에 보육교사 노동시간을 국가차원에서 구조적으로 발생시키고 있다”며 “휴게시간을 제공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가중시켜 신체적·정신적 질환을 유발하는 등 보육교사의 희생과 헌신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국공립시설 증가와 보육교사 근무환경 개선이 우선

정부의 보육예산이 매년 늘어나고있는데도 보육교사들의 장시간 노동과 낮은 처우가 개선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윤희숙 KDI 연구위원은 ‘보육·육아교육 지원에 관한 9가지 사실과 정책적 함의’ 보고서에서 “보육서비스 질을 모니터하고 개선시키는 시스템 정비 노력이 공급증가를 따라 잡지 못했다”며 “시장에 진입하기만 하면 공적지원이 보장되는 구조다 보니 수익률을 기대한 공급자들이 대거 진입해 이익집단을 형성했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로 2008~2012년 사이 어린이집은 연평균 2천300여개 증가했다. 어린이집 인허가증이 1천만원에서 4천만원에 거래되고, 서울지역 권리금이 1억5천만원이고 그 외 지역이 3억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윤 연구위원은 “권리금은 수익에 대한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며 “고액의 권리금을 지불한 원장이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인건비를 떨어뜨리는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율이 낮은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혔다. 2011년 기준 전국 보육시설 24만8천635곳 중 국공립보육시설 비율은 2만229곳(8.1%)에 그친다.

김호연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어린이집보육비리고발센터 상담실장은 “우리나라 국공립보육시설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며 “(2013년 기준) 일본이 53%·스웨덴이 75%인 것을 감안할 때 국공립보육시설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공립보육시설은 보건복지부에서 정한 인건비 지급기준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있어 민간보육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 좋은 편이다. 국공립보육시설의 비율을 높이면 민간보육시설을 견인하는 효과가 있어 임금·처우가 개선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0.1% 미만인 보육교사의 낮은 노조 조직률도 이들이 노동조건 개선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김 실장은 “보육교사들은 교사 신분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노조에 관심이 없다”며 “하지만 처우를 개선하려면 노조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부모·교사 모두 만족하는 무상보육 되려면

무상보육은 보육서비스 질의 향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걷는 보육교사들의 처우로 인해 당초 취지와 달리 보육서비스 질이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6월 인권위 설문조사 결과 보육시설에 종사하는 보육교사 중 75.5%가 스트레스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변했다.

최아무개 보육교사는 “보육교사들의 마음은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교사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겠냐”며 “보육교사들의 처우가 낮으면 낮을수록 보육서비스의 질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있는 부모 강혜진씨는 “(보육교사가) 업무상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이것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아이들한테 영향이 미치지 않겠냐”며 “교사들의 처우가 개선돼야 서비스의 질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무상보육 시대에 걸맞은 복지서비스 질 향상과 보육교사 처우 개선을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들은 보육교사 2교대제 도입과 처우개선을 위한 정부개입을 주문했다.

심선혜 의장은 “12시간 보육을 제대로 제공하고 보육교사들의 8시간 노동을 준수하기 위해서는 8시간 근무자의 2교대제가 도입돼야 한다”며 “이와 함께 8시간 중 보육시간은 5시간으로 단축하고 3시간 동안 보육준비를 해 보육의 질을 높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사회복지사들처럼 임금가이드라인을 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민간보육시설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들의 처우와 고용 문제를 정부가 개선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갈 연구실장은 이어 무상보육 정책발전과 보육교사 처우개선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상보육의 정책목표는 부모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이었다”며 “(무상보육 취지를 살리기 위해) 복지서비스 수요자인 부모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더불어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애아동 보육교사 현황은
“고용불안·근골격계 질환 발병 가능성도 높아”

장애아동 전담보육시설은 민간 보육시설보다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민간 보육시설에서 일하는 보육교사의 임금보다 장애아동 보육시설 보육교사의 임금이 약 20만원가량 높다. 또한 정부에서 보육교사 임금의 80%를 지원하고 있어 원장은 임금의 20%만 부담하면 된다.

장애아동 보육시설에는 장애아동 3명당 보육교사 1명이 배치된다. 장애아동 3명이 배치돼야만 정부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1명이라도 결원이 생기면 정부지원금이 끊겨 해당 학급 보육교사가 권고사직하는 경우가 많다.

문경자 전국장애아동보육교사협의회 회장은 “장애아동의 경우 입원이 잦고 부모들이 장애유형에 따라 전문적으로 돌보는 곳을 선호한다”며 “장애아동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고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교사들은 고용불안을 느끼면서 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장애아동 보육시설은 장애 유형별로 학급을 구분하지 않는다. 장애 유형에 따라 전문 보육교사들이 담당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장애아동의 연령대 또한 다양하다. 0세부터 13세까지 있으며, 몸무게도 천차만별이다. 뇌병변 장애아동을 담당하는 보육교사는 식사·목욕·이동 등 일거수일투족을 돌봐야 한다. 그래서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는 보육교사들이 많다.

문 회장은 “(비용 문제 등으로) 경력이 오래된 장애아동 보육교사를 어린이집에서 부담스러워하는데, 장애아동의 경우 숙련된 경력 보육교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노동강도가 심해 직업적인 만족도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제갈현숙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은 “장애아동 3명당 보육교사 1명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원장은 학급을 개설할 때 영업적 효과를 보게 된다”며 장애아동 보육정책이 공평성을 가지려면 이런 차별적인 면이 시정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보육을 비용의 측면보다 사회복지의 영역으로 본다면 장애아 1명만 있어도 학급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아동보육제공기관협의회에 등록된 장애아동 전담보육시설은 현재까지 169곳이다. 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아동은 1만7천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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