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통상임금 문제는 한국지엠·갑을오토텍 등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사업장에서 오랫동안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오던 문제다. 지난해 금아리무진 노동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 승소 판결에 힘입어 올해 초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가 통상임금 관련 대표소송을 제기하는 등 수십 개 노조가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월 미국 방문 당시 투자유치 명목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업인들과 함께 회동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이 자리에서 대니얼 애커슨 지엠 회장과 대화를 나눴다. 대통령이 먼저 말을 걸었다. “지엠 회장님께서 북한 문제 때문에 (한국에서)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 오신 것 보니까 철수가 아니라 투자를 더 확대하러 오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죠?”라고.

기다렸다는 듯이 애커슨 회장은 지난 2월 발표된 8조원가량의 신차 투자계획을 계획대로 집행하기 위해서는 통상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그 문제는 지엠 혼자 겪고 있는 문제가 아니고 한국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로 꼭 풀어 가겠다”,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보겠다”고 화답했다. 이렇게 되면서 통상임금 문제는 갑자기 총자본과 총노동 사이의 한판 대결의 의제가 됐다.

최근 크게 늘어난 통상임금 소송은 노동자에게도 양날의 칼이다. 한겨레신문은 지난달 27일자에서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양날의 칼”이라고 썼다. 원래 받을 돈을 되찾는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금아리무진의 경우처럼 되찾을 돈은 제대로 되찾지 못하고 임금체계만 자본에 유리하게 바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섭력을 가지고 있는 거대 노조들에게는 이런 지점은 크게 우려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무노조 또는 어용노조 사업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제 역시 개별 사업장 차원이 아니라 전 계급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정작 우려되는 점은 칼자루가 자본측에 넘어간 점이다. 대법원은 노동측의 우려에도 자본의 요구대로 해당 소송을 전원합의체로 넘겼고, 이례적으로 이달 5일 공개변론을 가졌다. 대법원은 공개변론에 앞서 원고측이 변론에서 사용하려는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일부 삭제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화면을 담은 부분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에 대해 원고측 변호인은 “재계와 정치권의 압력에서 독립돼 법리적 판단을 해 달라는 요청이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대법원이 과연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독립된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 노사분쟁 해결을 사법부에 넘길 때에는 항상 칼날을 경계해야 한다. 사법부가, 대법원이 언제 우리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법리에 맞게 판결한 적이 있었던가. 손해배상 청구나 노동쟁의 관련 소송에서 수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간혹 법리대로 판결하는 양심적 판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통제받지도 않는 대한민국의 법원 시스템이, 그것도 대법원이, 그리고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과연 누구의 손을 들 것인가. 따라서 선출되지 않은 사법 권력보다는 차라리 총파업 투쟁으로 요구하고 쟁취하는 편이 더 낫다. 그게 노동운동의 정석이다. 설사 법원의 판결에 부치더라도 총파업과 같은 전투적 대중투쟁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사실 통상임금 문제는 노동시간 문제와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다. 이번 대법원 소송의 변호인들이나 노동문제 전문가들도 다 그렇게 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상여금이나 각종 수당을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 계산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서 배제하는 잘못된 통상임금 산정지침을 행정력으로 강제함으로써, 기업이 연장근로·야간근로나 휴일근로를 싼 임금으로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뒷받침했고, 그 결과 법정시간 외의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급여총액 중 기본급이 절반밖에 안 되는 정도로 임금체계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즉 장시간 노동이 잘못된 통상임금 산정기준의 결과라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된 통상임금 산정기준이나 그로 인해 왜곡된 임금체계가 장시간 노동을 낳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장시간 노동에 대한 욕망이 그것들을 빚어내는 원인이다. 장시간 노동을 강제하기 위해 그런 잘못된 산정지침을 고수하고 그 결과 임금체계가 왜곡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계는 투쟁 과정에서 자본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의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점, 공짜로 부려먹는 잉여노동시간을 최대한으로 연장해 노동자에 대한 자본의 착취를 극대화하고 있는 점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아야 할 것이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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