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71일 동안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철탑에서 농성을 했습니다. 견디다 못해 눈물을 머금고 지난 5월9일 내려왔습니다. 지난해 11월20일 늦가을에 올라가서 꽃피는 봄에 내려온 것입니다. 정말이지 추웠습니다. 어두워지면 온도가 뚝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을 수도 있겠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란 별게 아닌가 보다!’

철탑 위에서 얼어 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때가 생각납니다. 날아다니는 새가 아닌 인간이 땅을 밟고 살아가야 함에도 하늘에 떠 있었으니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습니다. 절박함과 의지로만 견디기엔 떨어지는 면역력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울산의 최병승·천의봉 동지는 평택의 저희들보다 100일 더해서 270일을 넘겼습니다. 새가 아닌 인간인데, 그것도 좁아터진 2평 남짓한 하늘 위 감옥에 갇힌 채로 말입니다. 철탑농성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저도 몰랐고, 두 동지도 몰랐을 겁니다.

매정한 세상에서 누가 가늠할 수 있겠습니까. 최병승·천의봉 동지가 저희들보다 먼저 올라가서 저희들보다 100일이 지나 뙤약볕에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마 기간에 송전탑에서 농성을 이어 갈 줄을 말이죠. 지상에서 텐트를 20미터 띄운 정도라고요? 하루 세 끼나 올려주면 100일이고 1천일이고 농성하겠다고요? 그건 그렇지가 않아요. 겨울엔 손발과 눈·코·입·귀를 얼어붙게 하는 추위와의 사투였지만, 여름에는 반대로 등짝과 가슴에 전해져 오는 뜨거운 열과의 사투일 겁니다. 그것도 떨어지면 사고 나는 두 평의 관 같은 천막에 갇혀서 말입니다.

무엇보다 송전탑 농성이 길어지면 안 되는 무서운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사람이 고공농성을 선택한 이유는 절박함인데, 그게 길어진다는 건 안 풀리고 있다는 겁니다. 법이 정한 대로 불법파견이니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요구에 대한 답을 받아 내지 못한 채 두 동지는 270일 넘게 철탑 위에 묶여 있는 겁니다. 절박함을 가진 고공농성자들에게 목표가 번번이 좌절됐다는 소식만큼 큰 실망감은 없습니다. ‘국정조사 실시! 비정규직 정규직화! 해고자 복직!’의 요구를 걸고 철탑에 올랐던 저의 경우는 그랬습니다. 대선 전에는 정부와 정치권에서 국정조사 등으로 쌍용차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니, 대선 끝나고 나서 하나같이 말과 얼굴을 바꿨습니다. 사측과 기업노조도 이때다 하고 길길이 날뛰더군요. 단 한 명의 해고자도 복직되지 않았는데 3년7개월 만에 무급자 복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언론에 선전했습니다. 이를 철탑 위에서 지켜보는 제 마음은 까맣게 탔습니다.

우리안의 어떤 관성이 문제가 아닐까요. ‘이틀 삼일 한꺼번에 노동자가 파업을 하면, 풀릴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최병승·천의봉 동지가 올라간 철탑 바로 아래 현대차 울산공장에는 3만~4만명의 노동자들이 같은 현장라인에서 똑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하나 된 투쟁과 파업을 조직해 내지 못해서, 대법원에서도 확정난 정규직 전환 문제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큰 문제인 것입니다.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정규직 조직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정규직 조합원 한 명 한 명에게 물어봅시다. ‘정규직화하라는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는 것에 반대하세요?’라고. ‘정규직은 사내하청 노동자를 고용안전판으로 삼고자 한다.’ 이렇게 은연중에 입 밖으로 쉽게 내뱉는 진단이야말로 이 사회에서 자본의 논리 아닙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굳이 차별을 두고 자기 살자고 남을 죽이려 합니까.

이게 어디 현대차 정규직·비정규직만의 과제입니까. 270일 넘게 울산 철탑을 애써 보려 하지 않았던 우리 모두의 문제 아닙니까. 법에 보장된 파업 한 번 하려면 수십명이 피 터지고 납치당하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 동지들의 투쟁을 모른 척했던 우리들이 반성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규직 전환 대신 신규채용을 한다는 현대차 자본에 맞서, 파업을 조직하기는커녕 비정규직지회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애기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바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현대차의 불법파견은 사실인데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냐, 신규채용이냐의 차이는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노비문서를 태울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20일 울산 송전탑으로 모입시다. 얼마 전 현대차비정규지회가 금속노조 지침에 따라 파업을 했습니다. 수십여명이 구사대에 맞아 다쳤고, 박현제 지회장은 납치당할 뻔하다 구출됐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최병승·천의봉 동지는 속이 또 까맣게 탔을 겁니다.

여러분! 많이 모여서 갑시다. 철탑 위의 기쁨이 무엇인 줄 압니까. 먼 곳에서 친구들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립된 곳에서 인간은 외로움을 많이 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가서 친구들의 외로움과 무기력감을 날려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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