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는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에 맞게 실근로시간을 단축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에 노력하며, 정부는 근로시간단축지원금 등 지원대책을 마련한다."(2004년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노사는 근로시간단축을 위해 장시간 근로를 유발하는 작업방식을 개선하고, 법정 근로시간 준수, 연차휴가 활용 촉진 등 건강한 직장문화 조성에 노력한다. (…) 정부는 근로시간단축으로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에 대해 컨설팅·신규채용 인건비 등 종합적 지원방안을 강구한다."(2013년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은 2004년 2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이 채택한 것이고,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은 지난달 30일 한국노총과 한국경총·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것이다.

4일 노동계에 따르면 두 개의 협약은 토씨만 조금 달라졌을 뿐 기본 골격과 내용은 유사하다.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고용률 70% 달성 일자리 협약이 2004년 참여정부 시절 나온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베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임금직무혁신지원센터'에서 '임금직무센터'로

2004년 협약은 전문과 23절, 55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주요 합의사항은 노동계는 향후 2년간 임금안정에 협력하고, 경영계는 인위적인 고용조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정부는 기업의 고용확대에 대한 세제 등 지원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이다. 2004년에 나온 △실근로시간 단축으로 일자리 나누기 △퇴직자 재취업 촉진을 위한 전직 프로그램 강화 등은 올해도 수식어만 바뀐 채 그대로 실렸다.

노사정은 2004년 협약에 실린 "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및 취약계층·중소기업 근로자도 함께 배려하는 노동운동을 전개한다"는 내용은 올해 협약에서 "고임금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인상분의 일정부분을 비정규직·협력기업 근로자 처우개선 등에 활용하는 운동을 전개한다"는 조항으로 살짝 바뀌었다.

심지어 2004년 협약에서 노사가 임금제도 합리적 개선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설치하기로 한 '임금직무혁신센터'는 올해 협약에서 "임금체계 개편을 촉기하기 위해 임금직무센터를 설치한다"는 내용으로 다시 등장한다.

'선언'에 그친 일자리 협약, 9년 만에 동어반복

2004년에도 노사정 협약을 체결한 직후 정부는 일자리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향후 5년간 200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종합대책의 핵심은 △공공서비스부문에서 사회적 일자리를 3천개 만들고 △공무원과 군부사관 4천명 증원하며 △2008년까지 공기업 127곳에서 매년 청년층 3% 이상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민간부문 인턴제 활성화와 중소기업 지원대책도 포함됐다. 박근혜 정부의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로드맵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2004년 협약은 논의기간이 두 달이었고 중간에 공개토론회를 거쳤다는 점에서 한 달 만에 속성으로 끝난 올해 협약과 절차상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이 9년 만에 되풀이된 배경은 협약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6월까지 노사정위는 2004년 협약에 대한 이행평가 회의를 진행했다. 55개 항목 중 이행완료 항목은 20개로 36.4%에 불과했다. 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교대근무제 등을 통한 고용창출 및 노동생산성 향상, 대기업의 하도급 단가 현실화와 하도급업체 경영안정 지원,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 노력 등은 종결처리됐다. 점검의 실효성이 없거나 유사한 후속합의가 이어졌다는 판단에서다. 게다가 선언적 수준이어서 이행 정도나 완료 시점을 측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점검대상 제외 항목'이 절반(49.1%)에 육박했다.

이영면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2004년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의 성과 및 정책적 시사점' 연구논문에서 "사회적 타협은 경제적 교환이 아니라 정치적 교환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간 활발한 논의와 국민 다수로부터 적극적 지지가 요구된다"며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협약 행위자들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협약 체결의 주체들은 이 교수의 평가를 되새겨 봐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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