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중 발언과 정부의 노사정 대화 제안으로 촉발된 통상임금 논쟁과 관련해 노동계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와의 연대’를 검토하고 있어 주목된다.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고립과 성과 위주 임금체계 개편을 막기 위해 공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현대·기아자동차와 한국지엠 노동자들이 통상임금 반환소송에 나서면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통상임금 연대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이 30일 오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교육원에서 ‘통상임금 논쟁의 본질과 대응방향’을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열었다. 통상임금 연대론을 앞서 제기한 비정규직 노동단체 관계자들과 금속·공공운수·민주연합노조 등 통상임금 소송을 다수 진행 중인 산별노조 정책담당자들이 발제자와 토론자로 참석했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통상임금 논쟁의 본질이 노동시간단축과 기본급 비중 확대 등 임금체계 정상화(개편)라는 점에는 상당 부분 공감대를 형성했다.

"반환임금 일부, 조직화 기금으로" 분위기 형성

통상임금 연대방안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통상임금 반환소송에서 이길 경우 돌려받는 금액의 일부를 미조직·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위해 적립하자는 것이다.

박준형 공공운수노조·연맹 공공기관사업팀장은 “연대기금은 노사정이 관리하는 복지기금 같은 형태가 아니라 ‘조직된 노동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와 관련해 “노조 조직률 제고 외에 최저임금 인상기금, 실업부조에 사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기금 출연 외에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교섭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공동대응 △사내하청 노동자 소송 지원을 연대방안으로 주문했다.

연대기금 출연규모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도 나왔다. 이남신 소장은 “규모는 중요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돌려받게 될 금액의 5~10%면 적당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은 “소송으로 받게 될 체불임금의 절반을 기금으로 내놓자”고 제안했다. 오 위원은 “이름은 체불임금이지만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3년간 소급액을 합산하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연봉을 뛰어넘는다”며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 투자하지 말고 저임금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노동자 나쁜 사람 만들어서야”

대기업 노조들이 주로 가입해 있는 산별노조 관계자들은 통상임금 연대에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박준형 팀장은 “현장간부와 조합원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고, 소송 후 거출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수 있다”며 “충분한 토론과 거출방식에 대한 사전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금속노조 관계자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니냐. 통상임금 반환소송은 개별적으로도 가능한데 연대임금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기업 조합원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는 우려를 전했다.

토론자로 참석한 엄교수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연대임금 주장이 확산되는 것이 우리에게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정부와 재계가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소송에 대해 "귀족노동자들의 돈 잔치"라고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대세·대표소송제 제안도

노동자연대를 위한 대안으로 ‘연대기금’이 아닌 ‘연대세’를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 쪽에서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돌려받은 뒤 발생하는 세금을 비정규·저임금 노동자를 위해 사용하도록 정부에 촉구하자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담도 덜고 국가의 책임을 강제하는 효과를 보자는 것이다. 이남신 소장은 “통상임금 연대는 정부와 재계가 만들어 놓은 ‘귀족 노동자’ 프레임을 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인수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해서는 대표소송을 통해 비정규 노동자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산별교섭에서 강하게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근 정책실장은 “여러 우려들이 있지만 통상임금 연대의 관점은 필요하다”며 “산별연맹과 지역본부의 의견을 수렴해 로드맵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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