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윤정 기자
애초 콘셉트는 '쌍용자동차 해법을 고민하는 노동계 젊은 논객들의 직설 좌담회'였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문제제기가 터져 나왔다. 좌담회에 참석한 한 논객은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동지들한테 오늘 젊은 논객 좌담회에 간다고 했더니 도대체 누구냐고 따지더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무리했다. 인정. 사실 이번 모임의 출발은 이렇다. 좀 발랄하게 그리고 신랄하게 가자는 것. 시종일관 엄숙하고, 항상 입바른 소리만 하는, 어쩔 땐 너무 옳아서 들으나 마나 한 이야기들은 집어치우자는 것.

그래서 생각은 깊어도 눈치는 얄팍한, 말은 잘 통하는 3인방이 모였다. 이들의 공통점은 그 흔한 박사학위도 없고, 어느 노조의 대변자도 아니라는 점이다. 내부자는 아니지만 관계자로서 꽤 오랫동안 지척에서 쌍용차 문제를 농밀하게 짚어 왔다는 점도 닮았다. 오민규(41)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곽상신(41) 워크인연구소 연구원, 한지원(36)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 그들이다. 이달 20일 정오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쌍용차 사태와 자동차산업 노동운동에 관해 담소를 나눴다.

 

 

최근 한 달 사이 쌍용차에서 굵직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171일간 철탑 위에서 평택공장을 바라봤던 한상균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과 복기성 쌍용차비정규직지회 수석부지회장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땅을 밟았다. 그리고 무급휴직자 454명이 생산라인에 투입됐다. 마힌드라는 유상증자한 800억원을 입금했다.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지켜봤는지 물었다.

"171일간 철탑은 오로지 공장만 바라봤다"

곽상신 : 다행이다. 건강이 가장 큰 문제였으니까. 한상균 전 지부장에게 어서 내려오라고 말씀드렸다. 한 전 지부장이 많이 아팠겠다 생각하니 같이 아팠다. 이제 회사가 답을 해야 한다. 해고자 문제만 남았다. 이제 전향적으로 이 문제를 풀겠다는 태도를 기업노조와 회사가 보여 줘야 한다. 경영정상화와 X100 출시시점을 앞두고 있는 쌍용차 입장에서도 해고자와 갈등을 지속해서 좋을 게 없다. 쌍용차지부도 기업노조와 같이 해고자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오민규 : 철탑은 일종의 현장과의 스킵십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정조사를 축으로 하는 대정부 투쟁과 함께 고공농성은 공장 바로 앞에 철탑이라는 거점을 만들어 회사를 상대로 대자본 투쟁의 일익을 담당했다. 철탑에서 매일 출퇴근 선전을 했다. 아침마다 출근하면서 철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는 조합원이 늘었다. 현장을 조금씩 바꾸는 진지 역할을 했다.

무급휴직자들이 8주간 교육을 받을 때도 라인으로 다 투입될 수 있을까 불안이 컸다. 결국 17명 빼고 모두 현장에 안착했다. 고공에서 공장을 내려다보는 눈이 있고 현장에서도 고공을 바라보는 눈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해고자 문제까지는 못 갔지만 절반은 해결한 셈이다.

무급휴직자들이 복직한다고 했을 때 쌍용차지부는 만감이 교차했다. (해고자도) 같이 들어가야 하는데 (무급휴직자) 먼저 들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서운했겠나. 그런데도 무급휴직자들을 축하하면서 안아 줬다. 현장에도 이들을 안아 달라고 요청했다. 쌍용차지부의 멤버십은 밖에 있는 해고자들에 있다 해도 그 리더십은 현장노동자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한지원 : 동의한다. 철탑 고공농성은 현장과 접촉면을 넓히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올해 3월인가, 기업노조가 불러서 간부교육을 한 적이 있다.

모두 : 정말? 으하하하.

한지원 : 어이없는 그림이긴 한데 그것도 철탑효과다. 마힌드라 먹튀 의혹이 제기되고 무급휴직자가 복귀하면서 기업노조가 상당히 흔들렸다.

그 배경은 두 가지다. 우선 하나는 마힌드라에 대한 두려움이다. 상하이차 악몽이 되풀이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는 거다. 다른 하나는 철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리적 압박이 굉장히 컸다. 철탑은 그 존재로 현장에 분명한 메시지를 줬다. 국정조사 요구부터 시작해 마힌드라 이후 전망까지…. 물리적으로 현장에 존재하는 상징이었다.

근데 지금은 철탑농성이 정리된 상황이다. 사실 철탑농성을 더 이상 유지하는 것도 정세적으로 큰 의미는 없었다고 본다.

쌍용차와 관련해 생각을 해 보면 이상한 게 있다. 객관적인 조건만 놓고 따져 보자. 예전에 8천명 근무할 때 손익분기점이 14만대 전후였다. 근데 인원이 절반으로 준 상태에서 생산량이 13만대를 넘어섰는데도 손익분기점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은 16만대는 돼야 손익분기점이라고 말한다.

오민규 : 맞다. 쌍용차 회사에서 밝힌 걸 보면 올해 말까지 14만9천대를 만들 예정이다.

한지원 : 쌍용차에서 16만대 운운하는 것은 올해도 적자가 날 것이라는 예고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물론 비용구조 측면에서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신용도가 낮으니 부품비도 높고 공조 쪽도 들어가는 걸 보면 20~30% 높은 것 같다. 장기계약을 못하고 당장 현찰 박치기로 지불해야 하니까 벌어지는 일들이다. 아, 근데 반조립제품(CKD) 수출이 4~5배 늘었다. 예전에 주로 러시아였는데 지금은 차칸(인도)으로 많이 간다.
앞으로도 이런 구도가 굳어질 거 같다. 그러면 노동자는 어떻게 되나. 안에 있는 산 자는 상시고용불안과 현장통제에 놓일 것이다. 그 중심에 이유일 사장이 있다. 이유일 사장 체제를 그대로 두면 상시고용불안 구조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마힌드라·이유일 사장·기업노조로 이어지는 삼각형이 이런 구조를 고착화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쌍용차의 다음 비전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점점 멀어져 가는 손익분기점

곽상신 : 구조조정 전인 2008년 쌍용차 손익분기점이 12만대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 조합원이 5천명을 웃돌았다. 근데 지금은 14만대가 나와도 적자라고 한다. 그때와 다른 게 뭘까. 쌍용차도 연말성과급으로 1천500만원씩 받던 시절이 있었다. 렉스턴이 히트를 쳤을 때다. 차값이 무려 3천500만원이던 시절이다. 코란도도 잘나가고 무쏘도 있었고 여기에 렉스턴이 대박이 났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만큼은 쌍용차가 국내시장의 리더였다. 근데 지금은 시장점유율이 2%로 떨어져 가격 리드도 못한다. 지금 코란도C가 2천만원대밖에 안 한다. 수출차는 더 싸다. 이러니 수익구조가 약화될 수밖에.

이유일 사장이 들어와서 수출비중 확대하고 시장 다변화한 것은 잘했다고 본다. 이유일 사장이 현대자동차 미국법인 출신이다 보니 그런 쪽으로 영업력은 있었던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 있다. 그런데 칠순 고령에다 고집도 세다. 정치권 말 안 듣는다. 해고자들에게도 악감정을 가지고 있다.

상하이차 시절 최형탁 사장은 기술연구소 출신이었다. 상하이차 기술유출에 매개 역할을 했다. 쌍용차가 상하이차로부터 아무런 투자도 이끌어 내지 못하고 자멸한 것은 경영진의 무능이 크다. 그런 측면에서 이유일 사장은 할 일이 있다. 고용안정화를 위해 경영비전을 만들어야 한다. 고용확대로 방향을 돌려 해고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민규 : 최근 쌍용차에서 마진율이 완성차보다 훨씬 높은 반조립제품 수출이 꽤 늘었다. 마진율이 완성차가 10%면 수출용 반조립제품은 거의 30%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매출이라도 라이선스 비용이 있어서 돈이 더 얹히는 것 같다.

반조립제품 수출이 늘었다는 얘기는 기업수지가 늘었다는 것인데 쌍용차는 이 대목에서 이해가 안 간다. 언론에 나오는 걸 보면 이유일 사장은 2교대 손익분기점으로 최소 16만대를 보고 있다. 올해 14만9천대를 만들고, 내년부터 당장 16만대 시스템으로 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굳이 X100 출시시점을 따지지 않아도 이미 해고자 복직여력은 갖춰져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얘기가 자꾸 딴 데로 샌다. 최근 이유일 사장 언론 인터뷰를 보면 2015년 1월이면 희망퇴직자가 돌아올 수 있지 않겠냐고 하더라.

한지원 : 반조립제품 상품매출일 경우 플러스 마진이 맞지만 그 비용이 정확하게 산출되지 않는다. 쌍용차 반조립제품은 쇼케이스가 아닐까. 마치 인도에서 돈 벌어오는 것처럼 보이게 말이다. 비용분계에서 하는 꼼수들이 많다. 이유일 사장이 딱히 수출에서 공을 세웠다고 보기 어렵다. 최형탁 전 사장과 역할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곽상신 : 쌍용차 경영정상화 시점을 언제부터로 볼 수 있을까. 쌍용차의 최고 생산대수는 2000년대 초반 15만9천대였다. 이때 쌍용차가 월급제를 시급제로 바꿨다. 왜? 잔업을 시키려고. 웃긴 건 당시 생산방식이 무식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이다. 코란도 뼈대(차체)를 만들면 그걸 트럭에 한 대, 한 대 실어서 도장공장으로 옮겼다. 한마디로 자동차에서는 말도 안 되는 생산구조였던 거다. 흐름생산이 안 되고 트럭으로 차체를 옮기다니! 15만9천대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나.

그러니까 옛날 기준 생산대수만 놓고 경영정상화 시점을 논의하기엔 무리가 있다.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재 1라인이 24짭이다. 짭수는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말하는데, 1시간에 24대를 생산한다는 뜻이다. 과거에 보면 2교대 기준으로 18짭 정도였는데 지금 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물론 2교대로 전환하면 줄어들 거다. 3라인 22짭이었다가 2교대로 돌리면서 16짭으로 줄였다. 물론 3라인에서 일하던 기존 노동자의 임금보장 측면이 강하다. 순수하게 생산성만 가지고 따진 수치는 아니다. 대략 1~3라인 생산짭수와 노동시간을 계산하면 2교대 물량도 추정 가능하다.

쌍용차의 '미존'<미친 존재감> 이유일 사장

곽상신 : 이유일 사장을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현대·기아차의 독주에 문제의식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국내 자동차시장에서 지엠이나 르노는 이미 생산기지화됐지만 마힌드라와 쌍용차는 다르다고 인식하더라. 현대·기아를 제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쌍용차를 키우고 싶은 욕심이 있더라. 트럭 같은 경우 현대·기아차 가격독점이 정말 심하다. 쌍용차가 아니라면 막기가 힘들다.

한지원 : 신형엔진을 개발하면서 크로스라이선스(Cross License) 계약을 한 게 이해가 안 간다. 크로스라이선스는 계약이 체결된 회사 간에 특허를 서로 제한없이 무상으로 쓰도록 하는 상호계약을 말한다.소형차 디젤엔진을 개발하는 크로스라이선스가 과연 쌍용차에 도움이 될까. 이유일 사장이 마힌드라와 치고 박고 싸워야 되는데 거꾸로 정치권이나 해고자들과 치고 박고 있다.

오민규 : 이유일 사장한테 나도 불만이 많다. 쌍용차 파업 배후에 사노련(사회주의노동자연합)이 있다고 주장해서 유감이 적지 않은 관계다. 근데 이유일 사장을 퇴진시킨다고 괜찮은 사람이 올까. 이사회가 마힌드라 손에 있는데 오히려 기술유출 하기 더 편한 사람을 골라 앉힐 가능성이 크다. (이 사장이) 현장노동자에게 공분을 살 정도로 문제를 일으키면 쫓아내는 게 맞다. 지금은 아니다. 진퇴를 이야기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크로스라이선스’라고 쓰고 ‘먹튀’라 읽는다

오민규 : 마힌드라 신차개발 프로젝트와 관련해 인도에서 나오는 뉴스를 보면 의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드명 S101은 전장 4미터 미만 경차급 SUV 차량이고 C101은 소형 승용차다. 아마 B100 프로젝트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차량 생산을 위해 마힌드라가 안드라 프라데시에 새 공장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에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이르면 내년 말 늦으면 내후년 초에 X100이 출시될 텐데. 인도에서는 내년 초에 생산에 들어간다. 마힌드라 먹튀 의혹이 불거질 것 같다.

최근 무급휴직자가 복귀하면서 현장노동자들이 안심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더 끌고 가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거다. 그러면서 회사의 장기적 전망을 고민한다. 마힌드라는 끊임없이 제기되는 먹튀 의혹에 답을 해야 한다.

곽상신 : 기술유출과 관련해서 다르게 볼 측면도 있다. 까놓고 현대차도 선진국에서 SUV 기술 훔쳐서 지금까지 왔다. 기술후진국 입장에서는 선진국 기술에 대한 욕망은 실로 엄청나다. 제3세계에 공장 지으면 일자리도 만들고 소득수준도 높이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국내 고용시장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라면 기술이전을 꼭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카피레프트운동도 하는데. 상하이차 시절 기술유출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마힌드라까지 그런 전례를 남기게 해서는 안 된다.

한지원 : 5천억원 들고 쌍용차에 들어왔는데 기술 욕심이 없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사실 너희는 안 그랬냐 그러면 할 말이 없다. 당장 쌍용차도 벤츠 기술 베낀 걸로 유명하지 않나.

오민규 : 맞지. 기술 그 까이거. 돈 주고 사 오면 된다는 게 요즘 철학인데.

한지원 : 기술이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인데 빼앗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국위선양이고 빼앗긴 입장에서 보면 망하는 게 죄지. 중요한 건 정부 태도다. 기술이전에 대해 통제할 만한 사회적 힘이나 노동자의 힘이 없다면 정부가 나서 규제하는 게 맞다. 근데 상하이차 때도 단 1원도 지원하지 않았다. 정부는 무조건 ‘알아서 하세요’다.

상하이차가 처음 로위 브랜드를 만들 때 영국에 갔는데 거부하니까 쌍용차로 온 거다. 로버도 마찬가지다. 타타로 매각될 때 영국정부가 각종 규제를 했다. 신자유주의의 대마왕이라는 영국도 이 정도로 대응했는데 우리 정부는 완전히 시장근본주의자다.

"왜 자꾸 하이디스가 떠오르지?"

한지원 : 상하이차 전철은 밟지 않겠지만 (쌍용차는) 하이디스와 비슷한 경로로 가고 있다. 처음에 하이디스로 들어온 중국비오이(베이징전자)가 기술을 훔쳐 간 뒤 빈껍데기 회사로 만들었다. 대만의 이잉크사가 2008년 인수했는데 기술약탈이 아니라 라이선스계약이라고 우겼다. 정당한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기술을 가져갔다고 했지만 기술유출이라는 코스는 같았다. 라이선스계약을 맺은 뒤 생산을 대만을 비롯한 해외로 넘겼다. 한국의 생산입지는 점점 줄어 유휴생산설비가 늘고 잉여인력이 생겼다. 결국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하이디스의 외주생산이 3배 더 증가했다. 라이선스비용을 100원 줬다면 외주생산비는 300원을 주는 적자외주였다.

오민규 : 분명한 건 상하이차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상하이차는 투자 없이 빼먹었다. 지금 쌍용차에서 뭔가 챙기려면 투자부터 해야 한다. 개발자금을 줘야 먹을 것도 생긴다.

지금은 기술유출이라는 단어보다 먹튀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기술보다 쌍용차의 과거 현재 미래가 다 탐나는 거지. 써먹을 때까지 써먹을 거다. 렉스턴 라인업이 유럽에 수출될 때는 다운사이징해서 2.0으로 갔는데 인도에 갈 때는 최고가 프리미엄가격으로 가려고 최고 사양인 2.7로 갔다.

기술공유, 같은 인류로서 뭐가 잘못이냐 할 수 있다. 그런데 노동자 생존권이 걸린 문제면 달라진다. 자본이 먹튀 의도를 갖고 들어와도 노동자들이 힘이 있으면 막아 낼 수 있다.

쌍용차 기업노조가 올해 임금협상에서 10만1천원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대충 돈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것 같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장기적 전망이다. 현장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짧으면 1~2년, 길면 3~4년 어떤 역량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

장기적 전망을 놓고 승부를 봐야 한다. 고공농성 이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답도 거기에 있다. 쌍용차의 장기적 전망에 대해 노동자의 실력과 힘으로 강제해 나가자는 것이다.

"마힌드라가 답할 차례다"

곽상신 : 1라인은 모노코크 라인으로 갈 것이고 2라인은 승용라인을 유지하고, 3라인은 코란도스포츠 같은 경쟁차종 모델을 체인지해서 갈 것이다. 지금은 디젤에 강점이 있고 쌍용차 특색을 최대화할 수 있는 차종으로 밀고 나가야 할 때다. 현대·기아가 독점하고 있는 상용차에 뛰어들어야 한다.

한지원 : 1톤트럭 생산계획 있을 텐데.

곽상신 : 그렇다. 어쨌든 마힌드라가 이런 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쌍용차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안은 굳이 팔고 나가지는 않을 거다. 마힌드라를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안타까운 것은 쌍용차가 제일 잘나가는 시점에 상하이차로 넘어갔다는 거다. 상하이차로 가고 카이런을 포함해 계속 죽을 쒔다. 그때 노조는 뭐했나. 오석규 집행부 비리로 나가고 그 다음 정일권 집행부도 허송세월을 보냈다. 한상균 집행부 들어와서 결국은 온갖 오물을 덤터기 썼다. 한상균 집행부가 강성이어서 그렇게 싸운 게 아니다. 상하이차가 기술을 빼 갈 때 전대 집행부가 겉으로는 막는다고 해 놓고 노무관리에 계속 당했다. 그 유탄을 2009년 다 받은 거다.

한지원 : 글쎄. 마힌드라가 부품사와 장기계약을 맺는다든지 강한 신뢰를 줄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면 또 모르겠다. 근데 전혀 안 한다. 오로지 소형 디젤엔진에 모든 전략을 집중하고 있다. 나머지 라인업은? 3라인은 지금 가장 바쁘지만 후속 차종이 없다. 사실 쌍용차가 신차를 내놓는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제 안 믿는다. 10년 된 차 껍데기만 바꿔서 페이스리프트라고 내놓고, 또 내놓고 이제 지겹다. 렉스턴W 풀체인지 계획도 있었는데 X100 때문에 밀렸다. 모든 신차계획이 다 밀린 상태다.

곽상신 : 중요한 지적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부품사다. 쌍용차 가장 취약한 게 부품사와 가격협상력이다. 트랜스미션도 사 온다. 마힌드라가 국내에서 신뢰를 받으려면 부품사와 동반성장해야 한다. 쌍용차 중심으로 한 부품사, 협력사들이 받쳐 주면 국내시장에서 장기적 성장이 가능하다. 정부가 어느 정도 지원을 하면 쌍용차 미래는 긍정적이다.

오민규 : 먹튀와 관련한 중요한 의혹 중 하나가 그거다. 마힌드라 리서치밸리 쪽에서 쌍용차 기술력을 결합해 미션을 개발 중이다. 자기네 나라서 미션을 개발한다는 데 반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C101·S101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부품을 현지에서 개발하고 있다. 쌍용차가 미션부문 약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 앞으로 미션을 인도에서 역수입해서 쓰겠다는 것인지 의도가 불분명하다.

곽상신 : 16만대 공장을 보고 미션공장을 짓는 것도 참 애매하지 않나. 미션 개발은 장기적 전망이 나온 가운데 진행되지 않을까. 딜레마다.

한지원 : 로버는 미션까지 다 만든다. 특색 있는 부분을 살려서 전체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 로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톱클래스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쌍용차는 중저가브랜드로 가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현대차 베라크루즈급으로 나와야 하는데….

오민규 : 인도나 남아공을 가면 지금도 톱클래스다. 흐흐흐.

곽상신 : 렉스턴이 출시될 때만 해도 '대한민국 1%' 광고카피가 먹혔는데 지금은 아니다. 근데 그때도 차 만드는 시스템은 엉망이었다.

완성차 노동자, 쌍용차 투쟁에서 배웠나

오민규 : 쌍용차 문제가 터졌을 때 위기의식이 높았다. 당시 국내에서 완성차 공장이 문 닫은 경험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자칫 저렇게 갈 수도 있구나 하는 공포를 몰고 왔다. 이어 부품사를 향해 광란의 탄압이 가해졌다. 이제는 한국지엠을 비롯해 현대·기아차도 물량경쟁·양보경쟁 체제로 전환되고 있다.

문제는 금속노조를 비롯해서 조금 여유가 있다고 보여지는 현대·기아차지부가 고민이 없다는 거다. 정치투쟁·현장투쟁을 어떻게 그릴 것인지 쌍용차 투쟁에서 배운 게 없다. 쌍용차가 우리 미래가 아니길 바랄 뿐이지, 그렇게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제로베이스나 다름없다. 암담한 상황이다.

2009년 쌍용차지부가 파업하던 와중에 현대차지부는 어땠나. 자동차산업 차원에서 뭉쳐서 단결하고 연대하는 기풍을 만들어야 할 때 윤해모 집행부는 무책임하게 사퇴해 버렸다.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 직후 벌어진 금호타이어나 한진중공업에서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저렇게 싸웠는데도 안 되더라는 패배감이 커졌다. 정리해고만 아니라면 무급휴직이라든지 다른 방식으로 풀어 보자는 생각이 강해졌다. 쌍용차지부처럼 전면파업으로 가면 작살난다는 것 때문에 다들 싸움을 피했다. 그게 부메랑이 돼 부품사 탄압으로 돌아왔다.

한지원 : 중장기적 측면에서 보면 쌍용차 사태 이후 한국자동차산업은 정세와 비대칭적이었다. 자동차산업이 위기를 겪은 2008년 금융위기는 현대차에 가장 빛나는 시간이었다. 세계적인 추세에서 예외적인 코스로 갔으니까. 쌍용차 사태에 대한 평가나 반성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자고 하면 "너나 하세요" 그런다. 왜? 퇴직스케줄과 관련이 있다. 퇴직할 때까지만 버티고 그 다음 세대로 미루자는 심리가 적지 않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금속노조 주축 세력이 쫙 나가게 된다. 주체적인 측면에서 세대 간 변화를 동시에 보지 않으면 쌍용차 할배가 나타나도 "나는 퇴직이다" 이러면 끝난다.

곽상신 : 쌍용차나 현대·기아차는 르노처럼 글로벌화된 기업과 다르다. 정몽구 회장이 물량조정 엄포를 놓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하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 사태가 자동차산업에 미친 영향은 크지 않다.

쌍용차 문제는 우리사회 복지시스템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돌아보게 했다. 문제는 취약한 상태를 알면서도 바꾸지 못했다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으로 복지국가를 내걸었지만 쌍용차 숙제를 풀 생각은 전혀 안 한다. 고용률 70%는 있어도 사회보장시스템 개편은 전혀 언급이 없다. 조만간 자동차산업에 또 한 번 위기가 닥칠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않으려면 노동계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오민규 : 집행부 바이러스라는 게 있다. 현장에 있을 때는 제대로 주장하다가 집행부에만 올라가면 정파를 초월해 똑같이 망가진다. 주간연속 2교대도 그렇다. 지금 방식으로 가면 조직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 사이가 더 벌어지게 된다.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늘리기로 귀결돼야 하는데, 임금과 노동강도를 맞바꾸는 바람에 신규일자리가 들어갈 공간이 사라졌다.

현대·기아차 주말특근 문제가 일자리 때문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했을 것이다. 안타깝다. 통상임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법적 권리? 당연히 보장받아야지. 근데 소득격차를 더 벌리는 쪽으로 간다면 대공장노조 조합원들이 명절에 가족·친지에게서 환영받을 수 있을까. 통상임금 소송 이기는 날이 대한민국에서 주가가 뛰는 날이라고 하더라. 공돈 같은 체불임금이니 차 바꾸고, 주식사고 그렇게 나갈 돈이다.

한지원 : 대공장 정규직노조의 임단협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본 적이 있는데 기존 프레임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기 힘든 구조다. 금속노조 지침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난리가 난다. 산별노조운동의 부작용이다. 단위사업장에서 자생력을 잃었다. 집행부가 바뀌어도 금속노조의 패턴은 그대로 유지된다. 말이 더 과격해지거나 부드러워지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주간연속 2교대 문제에 100% 동감한다. 전체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 지급능력이 되는 대기업에서 밤에 잠 좀 자자는 게 그렇게 급진적이고 대단한 일 같지는 않다. 미조직 노동자의 생활은 더 고단해질 수 있다.

오민규 :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게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한테는 독일 수 있다. 지금은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이 제외돼 있는데, 이번 논란이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흔들 가능성이 크다. 조직노동자 권리를 보장받자고 미조직 노동자 권리를 빼앗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곽상신 : 노조가 기업단위 내부의 이해관계만 대변하고 있는 게 문제다. 산업적 측면에서 역할을 못하고 있다. 통상임금 소송은 어느 정도 여력이 되는 노조들이 한다.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더 이상의 과욕은 부리지 말았으면 한다.

한지원 : 금속노조의 역할이 중요하다. 주간연속 2교대만 해도 그렇다. 주 40시간 투쟁하듯이 미조직 노동자 전체를 보면서 포맷을 잡아 나가야 하는데 그 힘을 엉뚱한 데 쏟아붓는다. 이미 만들어진 성과에 숟가락 얹는 방식으로 투쟁해서는 안 된다.

오민규 : 지난해 2월 현대차 불법파견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직전에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노조가 있어 좋았던 기억이 뭐냐고 물었다. "임금 올려 줘서", "고용보장 해 줘서" 이런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주로 "목소리를 내게 해 줘서 고맙다", "관리자와 맞서 싸웠던 게 좋았다"는 대답이 나왔다. 노조의 역할이 임금과 고용조건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히려 노조간부나 활동가다. 조합원들은 시장의 법칙이 아니라 연대의 가치를 깨달을 때 행복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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