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
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우리는 지금 노동자의 목숨값이 몇 푼의 이윤보다 하찮게 여겨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이윤을 향한 기업의 욕망은 기업의 책임과 의무를 모두 잡아먹고, 최소한 지켜야 할 생명의 권리마저도 무시하게 만든다. 그래서 기업을 제대로 규제·관리·감독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일하다가 죽는 일이 일이 일상이 돼 버릴 것이다. 아니, 이미 일상이 됐다. 확인된 통계만으로도 하루에 6명이 산업재해로 죽는다. 산재가 쉽사리 은폐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정말로 많은 노동자들이 전쟁과 같은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는 셈이다.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빼앗는 것은 살인이다. 게다가 그 살인의 목적이 자신의 이윤을 더 늘리기 위한 것이라면 이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살인이다. 이것은 기업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일을 하다가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죽을 줄 알면서도 안전그물을 설치하지 않는 기업, 위험한 화학물질을 다루게 하면서도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기업, 안전장구야말로 위험한 상황에서 그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켜 주는 유일한 도구인 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안전장구를 지급하지 않는 기업은 모두 자신의 이윤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악질적인 살인행위를 하는 것이다. 산재사망사고라는 이름의 ‘기업살인’은 심각한 범죄다.

그런데 기업살인에 대한 처벌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사업주가 안전조치를 위반해서 노동자가 숨지면 ‘7년 이하의 징역과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산재사고에서 사법처리 비율은 고작 5%다. 사망사고가 나도 대부분 벌금형으로 무마된다. 이마트 탄현점에서 냉동기 보수작업을 하던 하청노동자 4명이 질식사한 사건에서 원청과 지점장에게 부과된 벌금은 100만원이었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에서 불이 나서 하청노동자 40명이 사망한 사건에서는 원청업체 대표가 벌금 2천만원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노동자들이 죽어도 벌금만 내면 되는데 어떤 회사가 노동자들을 위해 안전장치에 돈을 투자하겠는가. 산재사망사고에 책임이 있는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그리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하는 노동부 모두가 기업살인의 공범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작업현장에서 문제제기도 하고 유해·위험 작업공정을 개선하면서 안전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 기업들은 위험한 작업을 개선하는 대신 오히려 그 위험을 외주로 돌려 버린다. 가장 악질적인 태도다. 그것이 위험하고 유해한 업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낮은 도급단가를 책정해서 하청업체들이 안전에 제대로 투자할 수 없도록 만들고, 법적으로 사용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악용해 하청업체들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책임과 위험을 떠넘기는 일이 횡행한다.

노동자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원청업체들의 부당한 행위는 또 있다. 하청노동자들이 작업환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계약을 해지해 버린다. 죽더라도 불만 없이 순종하는 노동자들로 채우겠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하려고 하면 그 업체를 통째로 계약해지해 버려서 같이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히려 산재신청을 만류하는 일도 생긴다. 또한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다시는 취업을 못하게 하겠다는 협박 때문에 노동자들이 스스로 공상처리를 하기도 한다. 위험을 하청업체로 떠넘길 뿐 아니라 원청이 하청업체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악용해 산재를 은폐하고 위험을 감추는 것이다.

이렇게 복잡하고 구조적인 문제 속에 놓여 있지만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기업들이 이렇게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치하고 조장하는 이유는 그것이 돈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재사망사고가 난 기업들이 그것보다 더 많은 손해를 보도록 만들면 된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의 획득이라고 해도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기업은 존재가치가 없다. 안전시설을 제대로 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음에 이르게 만든 기업들에게는 더 이상 기업활동을 할 수 없도록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 손해배상의 책임은 당연히 이런 구조로 인해 가장 많은 이윤을 얻는 원청 대기업에게 물려야 한다. 그래야 원청 대기업이 위험을 외주화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는 누구나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다. 그리고 이 권리는 누가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재해를 숙명으로 여기지 않고 현실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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