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 번역서인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를 2004년 출판하면서 그는 “1년을 방법론 연구로 다 보내면서 내린 결론은 가려지고 왜곡된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당사자들의 경험을 모으는 작업을 최우선으로 잡는 것이었다”고 회고했다. 전 의원은 “벌들이 꽃에서 재료를 모으는 것처럼 경험적 자료를 충분히 모은 다음 자신의 힘으로 변화시켜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표현했다.
‘노동자 전태일의 누이동생이자 또 다른 한 사람의 여성노동자’에서 국회의원이 된 전순옥이 의정생활 첫해인 지난해 활동을 담은 <전순옥의 힐링로드 2,923km>를 발간했다. “벌들이 꽃에서 재료를 모으는 것처럼” 움직였고, 노조와 만나 나눈 이야기를 오롯이 담았다. 시급 2천700원을 받으며 환자를 돌보다 병들어 가는 간병인, 음식물 쓰레기를 뒤집어쓰고 가족들 눈치를 보는 환경미화원,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상처만 깊어 가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얘기다.
한국가스공사노조·한국석유공사노조·전국전력노조·성북구청 환경미화원…. 이렇게 만난 노조가 31곳이다. <힐링로드>의 미덕은 만남이 대화록으로 정리돼 쟁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발전회사의 복수노조 허용 뒤 불거진 교섭창구 단일화 문제, 시장점유율 51% 미만으로 제한된 지역난방공사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 문제, 국책연구기관의 비정규직 문제가 대표적이다.
전 의원은 “노동이 답이고, 답은 현장에 있었다”며 이렇게 말한다. “국회의 빠듯한 일정과 수많은 약속과 회의 속에서 우리 사회의 갈등과 각 상임위에 맡겨진 정책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고 고심하지만 정작 해결의 실마리, 정책의 해답은 현장에 있었습니다. 국가 정책을 일선에서 집행하고 실행하며 몸으로 겪고 있는 공기업의 현장 근로자들이 그 어떤 정책전문가나 연구자보다 훨씬 깊이 있고 장기적인 비전을 가진 정책적 해법을 제시하고 주장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고 총선을 준비하던 시절, 전 의원은 "어떤 정치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소명이 새롭게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소명을 다하는 게 내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오빠나 어머니는 가장 약한 약자들 편에서 정말 안타까워하면서 온몸을 바쳐 살아오셨다. 두 분은 할 수 있었던 그때의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한 말이다.
<힐링로드>는 바로 국회의원이 된 전순옥이 어떻게 ‘소명’을 실천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초인 셈이다. 그는 대선 이후 잇단 노동자들의 죽음 뒤 민주통합당에 구성된 노동대책특위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두 번째 여정을 준비하겠다”는 그의 발걸음은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