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정용 금융노조 정책국장

공공부문 노사관계는 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정부의 예산편성지침에 따라 임금과 노동조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양대 노총 공공부문 산별노조(연맹)들은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진행하며 공동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매일노동뉴스>는 4차례 연속기고를 통해 무엇이 쟁점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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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존재의 성격을 담고 있다. 특히 한자로 이뤄진 사물의 이름은 그 이름만으로 존재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공공기관'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얼마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했는지, 얼마나 공공의 이익을 많이 생산했느냐를 기준으로 공공기관에 대한 평가가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기초가 확립된 공공기관에 대한 통제와 평가 틀은 존재이유를 배반하는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정부의 공공기관 통제는 필요악이다. 조직의 적절한 계획 수립과 이에 대한 평가는 조직의 생존과 개혁을 위해 항상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공공기관의 통제는 기관의 존재이유와 상관없거나, 그 이유에 반하는 것이다. 예산지침이라는 초법적 규제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통해 다음해 공공기관들의 예산편성지침을 내린다. 문제는 예산지침이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임금통제와 효율성 및 이윤 극대화를 최대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익을 위해 존재해야 할 공공기관이 앞장서 공익을 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공공기관별로 수행할 공익적 업무는 무시당한다.

정부는 지난 2009년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신입직원 초임을 삭감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청년채용은 늘지 않았다. 정원의 3% 이상을 청년층으로 채용할 것을 명시한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르면 공공기관은 1만2천명에 달하는 청년층을 더 채용해야만 한다. 하지만 공공기관 비정규직 규모는 2007년 3만10명(12%)에서 지난해 3만9천736명(14.2%)으로 늘었다. 우체국시설관리단·코레일테크 등 비정규직이 무려 90%를 상회하는 공공기관도 적지 않다. 선량한 사용자로서 의무를 다해야 할 공공기관이 비정규직 증가를 주도하고 있는 꼴이다.

예산지침은 김대중 정부 시절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을 위해 기획예산처에 임금 통제권을 부여하면서 시작됐다. 임금 통제가 목적이다 보니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매년 공공부문 임금인상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평균임금 상승률보다 항상 낮았다. 청년층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채용만 느는 것도 임금 통제를 위한 예산지침의 성격을 증명한다. 예산지침은 법률상 강제력이 없는 권고에 불과하다. 그러나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공기관은 지침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 지침이 공공서비스 시행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재무적 긴축과 임금·정원 통제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국민적 불행이다. 공공성 확대를 위한 예산지침 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예산지침을 공공성 확대를 위한 예산 협치 시스템으로 개혁해야 한다. 공공기관별 사업 특성에 맞는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전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 예산지침을 결정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시민사회를 비롯한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개방형 구조로 바꿔야 한다. 또 288개에 달하는 기관별 특성에 맞춰 예산지침을 짜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인 만큼 기관 특성을 잘 알고 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 예산지침을 각 공공기관들이 '질 좋은 공공서비스 제공'이라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한 '운영지침'으로 개정하는 방향도 생각해 볼 만하다. 또 예산지침이 헌법상 보장된 노동3권을 침해해 임금·근로조건을 일방적으로 제약하는 행태도 바로잡아야 한다.

정부는 단체교섭 사항을 지침에서 삭제하고, 노동법 위반 소지가 있는 임금·사내복지기금, 시간외수당 등에 대한 통제를 중단해야 한다. 차등 임금이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공공부문의 특성을 고려해 성과주의형 임금체계도 개혁해야 한다. 효율성과 이윤을 위해 존재했던 예산지침을 전면적으로 수정할 때가 왔다. 어느 때보다도 공공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지금이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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