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공포가 수십년 민주노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온통 사업장에 복귀하지 못한다는 공포에 사로 잡혔다. 불과 3일 만에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 지부는 집행체계가 무너지고 기업별노조가 설립됐다.

그동안 직장폐쇄를 당한 사업장에선 바로 복귀할 수 없었으므로, 심지어는 아예 사업장에 돌아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것이 간부와 노조경험이 있는 활동가를 겁을 먹게 했고 조합원을 공포에 몰아넣었다. 직장폐쇄 이틀 뒤 지회장 3명 모두가 사퇴해 버렸다. 이에 따라 선거국면으로의 전환을 통해 금속노조 지부를 살리기 위해 지부장이 사퇴를 선언하는 등 금속노조 만도지부는 급격히 무너졌다. 이 나라에서 민주노조운동의 역사라 할 금속노조 사업장에서, 그것도 현대차 등 대공장에 앞서 산별노조로 전환해 금속노조 건설의 중심사업장으로서 역할을 해 왔던 만도지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그걸 보고 노조들뿐만 아니라 권력과 자본까지도 놀라고 있다. 심지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노조 탈퇴와 기업별노조 가입을 밀어붙였던 만도 사용자조차도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지경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직장폐쇄가 이 나라 노동자에게 공포가 돼서 노조운동이 이 지경이란 말인가.

2. 사용자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개시한 이후에만 직장폐쇄를 할 수 있다(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46조 제1항). 노동조합의 쟁의행위는 직장폐쇄의 개시를 위한 요건이면서 계속을 위한 요건이다. 따라서 직장폐쇄는 노동조합이 쟁의행위할 때에만 사용가능한 사용자의 무기다. 노동조합이 쟁의행위를 중단하면 더 이상 사용자가 사용할 수 없는 무기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직장폐쇄가 단순히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항하는 사용자의 무기를 넘어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에서 우위에 서고, 심지어는 노동조합의 존립을 위협하는 흉기가 되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직장폐쇄는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항하는 행위수단에 그치고 있지 않다. 무엇이 이 나라에서 직장폐쇄가 이렇게 사용되도록 한 것일까.

직장폐쇄는 본래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행위로서 사용자의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이다. 쟁의에 참여하는 조합원에게는 그 쟁의기간에 무노동무임금이니 사용자는 임금지급의무가 없다(노조법 제44조 제1항). 노조가 쟁의행위를 해서 정상적인 조업이 어려운데도 사용자는 쟁의행위 불참 근로자에 대해서는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니 쟁의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의무를 면하기 위해서 사용자에게 노무수령을 거부해 그 손실을 방지하도록 직장폐쇄를 보장한 것이다. 이처럼 직장폐쇄는 그 본질이 쟁의행위자가 아니라 쟁의불참 근로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면하기 위해서 마련된 제도다. 부분파업·태업이라도 그것이 쟁의행위이고 그에 대해서는 무노동무임금인 것이므로 쟁의행위를 하는 조합원의 불완전한 노무수령을 거부하겠다고 사용자가 직장폐쇄할 것은 아니다. 따라서 직장폐쇄는 원칙적으로 쟁의행위를 하고 있는 조합원에 대해서가 아니라 쟁의행위 불참 근로자에 대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직장폐쇄는 쟁의행위를 하는 조합원들을 상대로 해서 실시돼 왔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만도·에스제이엠도 그렇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직장폐쇄제도와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직장을 폐쇄한다는 개념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쟁의행위를 하는 조합원들은 회사에 출근하지 말고 그렇지 않는 근로자들은 회사에 출근해서 근로하라는 사용자의 명령이 직장폐쇄제도가 돼버렸다. 지금 만도도 그렇고, 에스제이엠에서도 그렇다. 그 조합원들이 출근하겠다고 해도 사용자는 막무가내로 직장폐쇄라며 경비용역을 동원해서 회사 출입을 막고 있다. 앞에서 설명한 직장폐쇄제도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분명히 물 건너왔다고 귤이 탱자가 돼 버린 건가. 이 나라에서는 쟁의행위를 하지 않는 비조합원들을 상대로 해서는 출근하지 말라고 사용자가 직장폐쇄하는 걸 도무지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노동행정관청은 이렇게 쟁의행위 참가 조합원에게만 출근하지 말라고 하는, 즉 쟁의행위 참가 조합원의 노무수령을 거부하겠다고 하는 사용자의 직장폐쇄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아 왔다. 이것은 고용노동부가 직장폐쇄를 쟁의행위하는 조합원들만을 상대로 부분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제도를 해석해서 집행해왔기 때문이다. 이로써 직장폐쇄는 쟁의행위하는 조합원을 회사 밖으로 내쫓는 제도인 것으로 돼버렸다. 우리의 법원도 이에 부합하게 직장폐쇄가 있게 되면 사용자의 사업장에 대한 물권적 지배권이 전면적으로 회복돼서 쟁의행위 참가자들을 회사 밖으로 쫓아낼 수 있다고 판결해 왔다(대법원 1991.8.13. 선고 91도1324 판결/대법원 2005. 6. 9. 선고 2004도7218 판결 등). 
이제 더 이상 직장폐쇄는 쟁의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의 노무수령을 거부해서 임금지급의무를 면하는 제도가 아니다. 이미 그런 것은 이 나라에서 직장폐쇄의 본질은 아니라고 노동현실은 말하고 있다. 사용자가 쟁의행위 참여 조합원들에게 퇴거요구를 해서 사업장 밖으로 쫓아내는 제도로 됐다. 이것이 직장폐쇄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노조가 파업을 하면 파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근로제공 의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 노무수령을 거부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노무수령 거부는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근로제공의사가 있는 비조합원에게 행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직장폐쇄제도의 본질이어야 하는데도 파업하는 조합원들을 사업장밖으로 쫓아내고서 비조합원들을 통해서 조업하도록 하는 것이 이 나라의 직장폐쇄가 돼 버렸다. 이는 근로제공 의사가 없는 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노무수령거부를 하는 것이고 근로제공의사가 있는 비조합원들에 대해서는 노무수령을 하겠다는 사용자의 행위가 직장폐쇄라는 것이 돼 버린다. 도무지 존재할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법제도가 아닐 수 없다. 직장폐쇄를 하지 않아도 사용자는 그저 그렇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디에 노조의 쟁의행위에 대한 대항행위로서 규정한 노조법의 직장폐쇄제도의 본질이 있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도 이것이 직장폐쇄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너도 나도 물권적 지배권 운운하면서 이 나라에서 직장폐쇄를 사용자의 조합원에 대한 퇴거명령권으로 전락시켰다. 쟁위행위의 정당한 방법으로 사업장에서는 부분적·병존적인 직장점거가 보장된다(대법원 1991.5.14. 선고 90누4006 판결). 그런데 직장폐쇄로 인해 졸지에 이러한 직장점거가 정당하지 못한 쟁의행위 방법이 돼 버린다. 이것은 직장폐쇄가 노조의 직장점거에 대한 대항수단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에만 정당할 수 있다. 차라리 그렇게 말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이런 직장폐쇄에 관해서 말하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어떤 노동법학자나 판사도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노무수령 거부가 직장폐쇄의 효과요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조합원의 사업장 추방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쟁의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비조합원에 대한 노무수령 거부와 쟁의행위에 참여하는 조합원에 대한 사업장 추방은 병존적으로 하나의 개념에 포섭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는 다른 것을 배제하고서 서 있는 효과다. 사용자의 물권적 지배권이 전면적으로 회복돼서 조합원의 사업장 점거를 배제시킨다는 효과를 말하고자 한다면 직장폐쇄를 노조의 직장점거에 대한 대항행위로서 파악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 노무수령 거부의 권한을 부여해서 임금지급 의무를 면한다는 효과를 말한다면 더 이상 물권적 지배권 운운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두 가지 효과를 병존적으로 포섭해서 하나의 직장폐쇄에 통합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 이 나라에서 적나라하게 나타나고 있다. 조합원을 내쫓고서 비조합원들로 조업하도록 할 수 있는 제도가 직장폐쇄라고 운영되고 있다. 그러니 사용자는 조합원을 복귀시켜주겠다 회유해서 노조로부터 이탈시켜 노조의 쟁의행위를 무력화시키려고 한다. 복귀의 조건으로 은밀히, 그러나 복귀하고자 하는 모든 조합원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노조 탈퇴를 강요해서 노조가 더 이상 단체교섭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쟁의행위를 계속하는 것이 어렵도록 하고 심지어 노조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더 이상 쟁의불참 근로자의 노무수령을 거부해서 임금지급 의무를 면한다는 직장폐쇄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것은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기 이전에, 사용자의 쟁의행위 참가 조합원에 대한 추방행위로서 행해졌던 해고 등 추방행위를 노동기본권이 보장된 이후에도 여전히 직장폐쇄라는 범주 내에 포섭시키고 있는 것이다. 결국 직장폐쇄제도는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보장하기 위한 법해석을 저버리고 서 있는 이 나라의 척박한 토양이 노동기본권의 행사를 말살하는 흉기로 만든 것이다.

3. 직장폐쇄가 조합원에 대한 노무수령거부고 사업장 축출이니 노조는 근로제공을 위한 조합원의 사업장 출입을 요구했다. 그것이 거부되자 출입 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저지하는 경비용역·관리자들과 충돌했고 그것으로 노조의 쟁의행위는 불법의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노조간부·적극가담자를 배제한 선별복귀가 진행된다. 노조간부 등 소수만 사업장 밖에 남게 되고 이들에게는 징계절차가 진행된다. 장기투쟁사업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직장폐쇄는 지금 금속노조 만도지부를 무너뜨릴 정도로 강력한 사용자의 무기다. 무엇보다도 노조간부와 조합원에게 공포다. 직장폐쇄를 당한 사업장 사례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러니 직장폐쇄에도 불구하고 파업철회해서 복귀했다는 사업장들이 보여야, 그리고서 다시 더 힘찬 투쟁을 전개했다는 사업장이 있어야 직장폐쇄의 공포로부터 조합원을 지켜낼 수 있다. 이미 공포에 질린 자에게 떨지 말라고 말해 봐야 소용없다. 일단 그것이 공포가 아니란 걸 확인해주는 수밖에 없다. 쟁의행위가 직장폐쇄를 계속하기 위한 요건이라는 것은 노동부도, 법원도 부정할 수 없다. 어차피 쟁의행위를 해 오던 그대로 쟁의행위를 계속하면 그만이다. 이때는 직장폐쇄를 사용자가 철회하든 계속하든 관심을 둘 필요도 없다. 쟁의행위를 계속하기 어렵다면 쟁의행위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사용자에게 분명히 전달하고 언제부터 복귀하겠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때는 사용자가 출근하라고 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만약 무작정 나오지 말라고 하면 그때부턴 위법한 직장폐쇄인 것이고 임금을 내놓으라 하면 된다. 그러니 직장폐쇄는 무조건 사용자에게 백기투항해야 할 공포가 결코 아니다. 이 척박한 땅에서 노동자의 무지로 자라난 공포일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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