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이명박 정부는 주요 국정성과라고 네 가지를 며칠 전 내놓았다. 위기극복·국격제고·소외계층 배려, 농업개혁과 노사관계 선진화 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먼저 경제위기를 극복해서 기업 간 동반성장과 국가경쟁력 강화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큰 국제회의 개최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경제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역대 최고 수준의 복지지출과 대학등록금 인상억제, 지역격차 축소 등을 실천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농식품 생산과 수출액 증가, 농협개혁을 성공시켰고 노사관계 선진화를 이룩했다는 것이다. 통계숫자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어떤 정권이든 자기 업적을 과장하려는 것은 속성이라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 답을 못하면 그 이해도 거둬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경제위기를 벗어났다는데 왜 국민 대다수의 삶은 갈수록 절망의 늪 속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인가. 그토록 훌륭한 업적으로 성공한 정권을 한 핏줄인 새누리당은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이름으로 한사코 따로 놀자고 하는가.

노사관계 관련 성과로 내세운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비정규직 보호를 강화하고 고용의 질을 개선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사관계 선진화다. 비정규직 등 저소득 근로자에게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한편 공공부문 기간제 근로자의 무기계약직 전환, 차별개선과 정규직 이행기회 확대, 복지확충 처우개선 대책도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리고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 및 복수노조 시행 등을 통해 노사관계 선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현장 노사관계는 법과 원칙의 견지, 노사갈등의 자율해결 노력으로 87년 민주화 이래 가장 안정적인 추세를 나타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의 주장대로 개중에는 개선된 것도 있고 통계수치상으로 달라진 부분도 있으련만, 4년 반 만의 공들인 ‘국정성과’에 대해 노동계의 평가는 냉담함을 넘어서 아예 언급조차 없다. 어떤 미디어는 ‘뻔뻔스러운 자랑’이라고 해고된 스물두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목숨을 내던지는 현실을 두고 노사관계가 선진화됐다고 외쳤다. 그 용기는 차라리 가상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노동기본권 확장에 목표를 둬야 할 집단적 노사관계 제도는 오히려 사용자 편향으로 노동조합운동을 옥죄고 있다는 노동계의 비명을 뒷전에 두고 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새 제도의 정착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부작용으로 치부해 버려도 괜찮은 일인가.

성과에 대한 불신의 이유는 정책이 문제의 핵심에서 한참 빗나가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의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의 본질은 노동의 유연화였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고용의 선택권이 기업에 주어지고 노동정책의 초점은 ‘고용총량의 증대’에 모아졌다. 여기에는 노동조합운동으로 인한 규제 혁파 중심과제로 포함된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정부정책의 목표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을 통한 민주적 노사관계의 발전보다는 노사 간 협력을 통한 생산성 향상에 주어졌다.

이미 이명박 정부는 출범 당시 노사관계 선진화 정책을 노동유연화의 제도화와 법과 원칙에 의한 집단적 노사관계의 재구축으로 천명한 바 있었다. 그 정책수단으로 파트타임 활성화, 기간제 근로 사용기간 연장·파견업종 확대·탄력적 근로시간제·유연근무 확대·휴가사용촉진제 확대·근로시간 저축제 도입·성과급 확대·임금피크제 도입 등이 끈질기게 시도돼 왔던 것이다. 또한 집단적 노사관계 전략수단으로 십수년간 유예됐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제도가 급작스레 도입됐고, 그에 대한 통제장치로서 단체교섭 창구단일화와 근로시간면제 제도가 강행됐다. 아울러 ‘선진쟁의 질서 구축’을 위해 가차없는 공권력 투입을 단행되고, 단체협약 시정명령과 단협해지 공세의 틈을 타 사용자들은 손배청구와 정리해고를 남발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법과 원칙의 준수'와 '노사자율 해결'만이 성전처럼 적용됐고 이에 대한 저항은 가차없는 형벌이 내려졌다.

이명박 정부의 노동유연화 확대라는 선진화 노동전략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곁가지 시책만 강조할 뿐 비정규직의 남용 금지와 정규직화 전략과는 한참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성과’라고 내세울 수 있었던 요소들은 정부 스스로 노력해 개선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나타난 변화일 뿐이다. 노동계의 반발과, 희망버스와 같은 시민운동의 저항 확산, 그리고 연이은 정권의 부정·비리 폭로, 총선거와 대선 같은 정치정세의 변화를 아무리 강심장 정권이라 해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제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여소야대라고 경영계는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그렇더라도 노동의 유연화 정책기조가 변하지 않는 한 이 시대의 의제인 경제민주화, 복지 확충,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서는 엄청난 눈물과 땀을 필요로 할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leewb45@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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