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산업노조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서희산업노조의 파업이 8일 현재 두 달째로 접어들었지만, 해결의 실마리조차 잡지 않고 있다. 원·하청 노사 3자가 이례적으로 ‘정규직화 합의서’를 체결했음에도 사태가 장기화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노동계에 따르면 그동안 비알코리아측과 물밑 접촉을 해온 화학노련(위원장 김동명)은 최근 한국노총과 공동으로 대책회의를 열고 전국적인 불매운동 전개 등 장기전에 대비한 파업전술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북 음성의 아이스크림공장에서 촉발된 원-하청 노사갈등이 전국적인 문제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연맹 관계자는 “비알코리아 경영진을 만났으나 정규직화 합의를 이행하려는 의지가 없어 투쟁의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알코리아측이 서희산업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지 않고 대신 처우개선은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연맹에 전달한 데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 4월18일 비알코리아와 서희산업 노사는 파업 직전 "원청 소속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하되 직접고용 시기와 방법은 10일 이내 노사합의로 결정한다"는 3자 합의서를 체결했다. 이어 서희산업 노사는 △기본급 4% 인상 △상여급 700% 및 성과급 200% 지급 △연봉제 폐지 등 근로조건을 대폭 개선하는 내용의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했다.

그런데 서희산업노조가 파업을 철회하자 비알코리아는 "5년 뒤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성숙하면 정규직화를 고려해 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비알코리아측이 93년 아이스크림공장 설립 이래 사상 첫 파업이라는 급한 불을 끄려고 정규직화 카드를 꺼내들었다가, 서희산업 정규직화가 모기업인 SPC그룹 전체에 몰고 올 파장이 우려되자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비알코리아는 노조와의 비공식 협상자리에서 “서희산업 노동자 80여명을 직접고용하면 수천명에 달하는 SPC그룹 계열사 하청노동자들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바 있다.

SPC그룹은 삼립식품과 샤니·파리바게트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국내 제과제빵업계의 터줏대감이다. 3천여개의 매장이 있는 국내 1위 베이커리 체인점인 파리바게트의 경우 성남공장에서 케이크와 냉동생지(반죽상태의 빵)를 만드는데, S기업·M기업 등 두 개의 사내하청업체가 도급계약을 맺고 주야 맞교대로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기업 식품제조·가공업체 대부분이 이 같은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서희산업 사태는 사실상 업계의 대리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심재호 연맹 정책기획국장은 “주고받을 협상의 여지가 있는 임금이나 근로조건 문제가 아니라 정규직 전환이 핵심 쟁점이기 때문에 노사 간 이견을 좁히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원청인 비알코리아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배경에는 새누리당이 지난 5월에 발의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사내하도급법)이 자리 잡고 있다. 사내하도급법은 불법파견 시비에 휩싸인 제조업 사내하청을 합법화하는 대신 원·하청 간 차별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 이후 위법적인 사내하도급에 대한 불법 부담이 컸던 기업들이 인력도급 형태의 사내하청을 계속 유지하도록 길을 터준 것이다. 최근 금속산업사용자단체협의회가 금속 산별교섭에서 "신규채용시 사내하청 우선 정규직화"라는 입장을 밝혔다가 최근 "사내하청의 위법적인 근로관계 감독 강화"로 후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연맹에 따르면 비알코리아 역시 서희산업과 오는 2022년까지 10년간 도급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에 대해 서희산업측은 "원청에서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내하청 문제는 사회 양극화를 초래하고 노동시장을 왜곡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대선을 앞두고 모든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1순위로 꼽고 있는 지금, 사내하청 문제 해결의 시계를 되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이 서희산업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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