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미영 기자


“환경 파괴로 빙산이 녹는 것처럼 노동권 파괴로 일자리가 녹아내리고 있어요. 한쪽에서 아무리 일자리 창출을 외쳐도 일자리 녹는 속도가 더 빨라 사회적 위험은 급속도로 커지죠. 그 핵심에 사내하도급이 있습니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대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통해 정규직 같은 중심부 노동을 없애고 그 빈 일자리를 사내하도급으로 대표되는 주변부 노동으로 채우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정리해고+아웃소싱’을 통해 사내하도급을 정규직 대체모델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법원의 현대차 불법파견 확정판결 이후 사내하청의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회가 13일 국회에서 열렸다. 민주노총과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홍희덕 통합진보당 의원이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직접고용 일자리가 간접고용으로 대체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노동시장의 질주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핵심은 ‘간접고용 금지’

이날 토론회에서 ‘사내하청 문제 해결을 위한 법 제도 검토’라는 주제로 발표한 강문대 변호사(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98년 파견법 제정을 계기로 불법파견과 위장도급 같은 위장된 형태의 간접고용이 급속도로 확대됐다”며 “간접고용이 ‘직접고용 원칙’이라는 노동법의 근본취지를 훼손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기간제를 제한할수록 외주화 같은 간접고용이 늘어나는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라도 간접고용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강 변호사는 현행 근로기준법 제9조(중간착취의 배제) 조항에 간접고용 금지의 원칙을 분명히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기법에 "도급·위탁 등 어떤 명칭으로도 제3자를 매개로 해서 노동자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삽입하고, 이를 위반하면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근로계약 체결의 형식적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 있는 경우에도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사용자 개념을 재정의하자는 제안도 했다.

비정규직법 10년 논쟁 반복하지 않으려면…

사내하도급은 제조업과 서비스업,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을 막론하고 전 산업에 걸쳐 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정규직 일자리를 대체하는 식의 사내하도급 활용전략의 결과다. 은수미 연구위원은 “대기업일수록 사내하도급을 많이 사용한다”며 “대기업의 비정규직 비중이 낮다는 것은 사내하도급을 고려하지 않은 오해”라고 지적했다. 300인 이상 기업의 경우 비정규직 규모는 2008년 기준으로 전체 노동자의 17.3%다. 여기에 사내하도급을 합산하면 이들 기업의 비정규직 규모는 37%로 늘어난다. 300인 이상 기업의 비정규직 중 사내하도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 넘는다.

경영계는 사내하도급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경우 기업의 비용부담이 커져 결국은 일자리가 축소되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은 연구위원은 “사내하도급의 정규직 전환에 돈이 든다는 것은 사실왜곡”이라며 “오히려 공공부문에서는 정규직으로 고용할 때보다 외주용역으로 운영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을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주업체의 중간마진(최소 20%)만 합산해도 사내하도급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 연구위원은 “법 제도 개선과 불법파견 감독 강화 같은 정책이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법 제정 과정에서 벌어졌던 10년 논쟁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법 개정과 관련해 △파견과 도급의 판단기준을 명확히 하는 내용의 파견법 개정 △적법한 사내도급의 경우에도 노조법상 사용자 책임 부과 등의 방안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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