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지나온 삶을 오롯이 밖으로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자서전이라는 이름이 붙은 글은 그래서 자기가 보여 주고 싶은 단면만 겉으로 내놓기 일쑤다. 부끄럽고, 자신의 이름에 걸맞지 않다고 여기는 이면은 장막 뒤로 감춘다.

홍희덕 의원이 구술 자서전을 냈다. ‘홍희덕의 지구 여섯 바퀴’가 그것이다. ‘국회의원이 된 청소부’라는 부제를 달았다. 책을 낸 동기는 “지인들은 제가 2012년 총선에 나가야 하니 책을 내자고 권했습니다”였다. “평소 저는 국회의원들이 관행처럼 경쟁하듯이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을 못마땅해했다”고는 했지만 대놓고 책을 내게 된 동기를 "총선에 맞춘 주위의 권유"라고 까발린다.

“쭉정이는 가라.” 홍 의원은 독자들에게 자신의 속살을 가감없이 내 보인다. “성인이 되려면 성장통을 거쳐야 하는 것”아니냐며.

큰아들 희덕이 보고 싶어 도망친, 인민군이었던 아버지 얘기에 한지 만드는 일을 하다 나중에는 화전민으로 전전했던 어린 시절, 공부하겠다고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간 일, 팔던 버스표를 몽땅 사기당해 결국 낙향해 시작한 장사, 그리고 두 번째 사기를 당해 군대에 갔던 일,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클라이맥스는 처가의 반대를 꺾으려 아홉 살 차이 나는 지금의 아내와 야반도주했던 일이 아닐까. 그는 때론 담담하게, 때론 격정적으로 얘기를 풀어 나간다.

무엇보다 보통사람에 못 미친다는 열등감, 혹은 자격지심 고백하기는 용감하기까지 하다. 남들 보다 늦은 아홉 살 나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때 얘기다. “난 그때까지 글을 읽을 줄 몰랐다. 글을 못 읽으면 선생님께 야단맞고 아이들이 놀릴까 봐 겁이 났다. 난 다른 아이가 읽었던 글을 외워서 마치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처럼 남들을 속였다. 글을 몰라서 임기응변으로 읽는 척한 행동이 왠지 부끄러웠다.”

국회에 입성하고 나서는 “기가 죽었다”고 고백한다. “하나같이 콧날이 빛났고 머릿결이 매끄러웠고 풍채가 당당한 율사와 교수 출신 국회의원들”에게 말이다. “초등학교 졸업뿐인 학력, 한평생을 청소부로 살아왔던 생애, 30년 동안 찬바람 맞으며 생긴 주름”이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고해성사다. 그러나 다른 아이의 육성을 외워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꾸몄던 아이가 뒤에 학급에서 1등을 도맡아 하고, 풍채 없는 청소부 출신 의원이 ‘동료 의원이 뽑은 후원하고 싶은 의원’이 된 것을 보면 그는 ‘열등감은 나의 힘’이라는 해피엔드 극본을 쓴 것일까.

이 책의 미덕은 그런 단순한 성공스토리류가 아니게 하는 힘이 있다는 데 있다. ‘국회의원이 된 청소부’, 홍희덕이 왜 의정활동 기간 동안 지구 여섯 바퀴를 돌았는지, 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는 열쇠다.

홍희덕 의원은 책에서 전태일 열사에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글을 전개한다. 홍 의원은 전태일 열사와 48년생 동갑이다. 홍 의원은 어머니의 병환을 회상하며 이소선 어머니를 생각하고, 상경했다가 다시 낙향하던 사연하며, 20대 초반 장사를 하며 평화시장에서 옷감을 떼어 팔던 때를 기억해 내면서 둘의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삶을 비교한다.

“물건을 떼러 갈 때마다 나는 뿌연 먼지가 흩날리는 다락방의 분주한 작업공간을 유심히 보았다. 옷감 부스러기가 그렇게도 많은 먼지가 돼 날릴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당신이 깨달았던 노동착취와 임금착복, 어린 시다들의 노동학대 등을 보지 못했다. 나와 당신의 스물두 살은 그렇게 달랐다. 길은 교차했지만 보는 눈은 같지 않았다. 나는 몰랐고 당신은 알았다. 당신은 보았고 나는 보지 못했다.”

청소부로 노조활동을 시작하던 2000년에 처음 전태일 열사를 깊이 알게 됐다는 홍 의원의 과제는 전태일 열사처럼 세상을 바로보고 싶다는 것이다. “내가 국회의사당 상임위 회의실에 있건, 노동탄압의 현장에 있건, 아니면 4대강 사업으로 망가지는 강변에 있건, 나는 여전히 빗자루를 들고 동부순환도로를 걷고 있다. 그렇게 나는 전태일, 당신을 품에 안은 채로 걷고 있을 것이다.” 전태일 열사의 꿈이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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