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5단체는 10일 오전 합동기자회견을 통해 “노동계는 사내하도급 관련 투쟁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선진국들은 전(全)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파견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불법파견 문제의 의미가 사실상 퇴색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영계의 이러한 주장을 무색케 하는 정부의 용역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매일노동뉴스>가 10일 입수한 고용노동부의 ‘외국의 사내하도급·파견 현황 및 제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의 업체들은 파견직에 대한 차별을 근절하거나, 간접고용을 줄여 나가거나, 강력한 법과 제도로 기업의 무분별한 파견 사용을 규제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는 노동부가 고려대 산학협력단(책임연구원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의뢰해 작성한 것이다. 연구팀은 독일 폭스바겐·프랑스 르노·일본 닛산 등 세계 주요 자동차 생산업체를 방문해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보고서를 통해 이들 업체의 간접고용 활용실태를 살펴봤다.

◇제조업 파견 허용된 독일, 차별은 "제로"=독일의 경우 ‘인간의 노동력을 상품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통용돼 왔다. 하지만 67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국가의 통제하에 직업소개업을 허용하고 있는 ‘직업소개 및 실업보험에 관한 법률’이 헌법상 직업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고 판결한 뒤 근로자 파견의 가능성이 열렸다. 5년 뒤인 72년 독일근로자파견법이 제정됐고, 건설업을 제외한 전 업종에 파견이 허용됐다. 법 제정 당시 파견허용기간은 3개월에 불과했지만, 2001년까지 순차적으로 연장돼 24개월까지 늘어났고, 지금은 파견기간에 대한 제한조항 자체가 없다.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경영계가 강조하는 이른바 ‘글로벌 트렌드’다.

노동부 용역연구팀이 방문한 독일의 폭스바겐은 전체 생산직 2만5천명 중 4천~5천명의 파견직을 쓰고 있다. 폭스바겐은 ‘오토비전’이라는 종합인력서비스전문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파견인력을 공급받는다. 오토비전은 메르세데스벤츠나 세아트 같은 다른 업체에도 인력을 파견하고 있다. 연구팀은 보고서에서 “폭스바겐은 오토비전을 통해 안정적이면서 즉흥적으로 인력을 제공받고, 오토비전은 고유한 경영확장을 시도한다”며 “인력서비스공급업체가 고유한 경영영업 목적을 가지고 전문업체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한국의 자동차산업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평가했다. 민간 인력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분석이다.

하지만 보고서에는 오토비전을 통한 일자리 질에 대한 언급이 빠져 있다. 오토비전을 통해 파견되는 노동자들이 폭스바겐의 단체협약을 적용받아 ‘동일임금 동일노동’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독일의 인력공급시템을 차용하려면 대기업 정규직과 파견업체 노동자의 임금이 동일하게 지급되거나, 차별을 최소화하는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폭스바겐의 ‘오토5000’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오토5000은 지난 2001년 8월 설립된 폭스바겐의 자회사다. 당시 폭스바겐이 독일보다 임금이 저렴한 동유럽 국가에 새 공장 건립을 추진하자 노조의 반발이 이어졌다. 결국 노사는 독일 울프스버그에 공장을 짓기로 하고, 대신 이 지역의 실업자와 청년구직자 5천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되 5천마르크의 급여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것이 오토5000 프로젝트다. 5천마르크는 폭스바겐 단협에 규정된 정규직 급여보다는 적지만, 울프스버그 지역 단협이 규정한 급여보다는 많은 것이다. 그 뒤 시간이 지나 노동자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 급여도 함께 올랐다. 폭스바겐은 2009년 오토5000 프로젝트 대상자 중 4천200명을 폭스바겐 소속으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폭스바겐은 비숙련 노동자들에게 자회사 정규직 일자리를 제공하고, 일정 기간이 경과하자 해당 노동자들을 자기회사 소속으로 전적시켰다. ‘모닝’ 조립공정 자체를 외주화해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회사”라고 주장하는 기아자동차와 전적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

◇스스로 간접고용 줄이는 일본의 기업들=인력파견 제도가 우리나라와 가장 흡사한 일본은 ‘아키하바라 묻지마 살인사건’ 등을 계기로 파견고용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져 있는 상태다. 연구팀이 일본의 닛산자동차를 방문한 지난해 11월 현재 닛산에는 정규직 3만642명과 비정규직 2천337명이 일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정규직 2천337명의 고용형태는 ‘유기계약’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기간제 노동자인 셈이다. 파견직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가 아니라 직접고용 노동자다.

닛산에 간접고용 노동자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천463명의 파견직이 사무업무·기술업무·특수엔지니어링업무에 투입된다. 중요한 것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직이 투입되느냐 여부다. 99년 일본 근로자 파견법이 개정되면서 2004년 3월1일부터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도 파견직 투입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닛산은 최근 직접생산공정의 파견직 사용을 중단했다. 대신 유기계약노동자를 직접고용해 사용한다. 법 개정에 앞서 기업들 스스로 간접고용 최소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시정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행보와 큰 차이를 보인다.

닛산의 이러한 선택은 파견고용에 대한 일본사회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다. 민주당 정권이 집권한 뒤 제조업에 대한 근로자 파견을 금지하는 법률 개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지난해 3월19일에는 이 같은 내용의 파견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은 우리나라 파견법과 비슷하거나 더욱 강화된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정한 파견기간을 경과한 불법파견에 대해 고용간주 규정을 적용하고, 원칙적으로 등록형 근로자 파견과 제조업 파견을 금지했다.

◇파견 사용 엄격하게 규제하는 프랑스=프랑스는 엄격하게 근로자 파견을 규제하는 나라다. 프랑스에서 파견 노동자는 임시적인 업무에만 사용되거나, 본사 직원이 휴직 등의 이유로 부재할 경우 이를 대체해 최장 18개월까지 사용할 수 있다. 상시적인 업무에는 파견직을 투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보고서에 따르면 개별 기업이 단협에 의해 제한된 인원을 파견받아 직접생산공정에 투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노의 경우 임시적 업무 등의 수행을 위해 6% 상한선 내에서 파견직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에도 파견직들은 르노의 정규직과 동일한 임금을 적용받는다. 르노는 이들 파견노동자들에 대해 노무지휘나 감독행위를 하지 않는다. 르노가 이들을 지휘할 경우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이번 보고서는 선진국의 주요업체들이 간접고용을 활용하는 데 있어 최대한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차별을 최소화하고, 간접고용 남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이 전(全) 업무에 파견을 허용하고 파견을 활성화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우리나라 경영계의 주장은 이러한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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